'세대·젠더·노사·이념·지역'…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

주 69시간 공표로 드러난 세대 갈등…'이대남 대 이대녀' 젠더 문제도
이념 논쟁까지 번진 노사 갈등…해묵은 영호남 지역 갈등도 여전

입력 : 2023-03-26 오전 6:00:00
지난 22일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벽에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이 작성한 '근로시간 69시간 개편안' 전면 철회 촉구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윤혜원 기자] 세대·젠더·노사·이념·지역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갈등 조정에 실패할 시 앞으로 국가를 지탱할 주요 요소인 노동·연금·교육·선거 개혁도 물거품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세대 갈등, '주69시간 갈등·연금 불신' 불렀다
 
26일 전문가들은 사회 대표적인 대립의 하나로 세대 갈등을 꼽았습니다. 최근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를 추진하려다가 청년 세대의 십자포화에 '재검토'로 방향을 튼 게 대표적인 갈등의 예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주 69시간제 실시를 입법 예고했으나 MZ(밀레니얼+Z세대)세대의 반대 목소리가 들끓자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제도 보완을 지시했습니다. 청년층은 윤 대통령 당선에 핵심 역할을 한 지지층입니다. 이를 잘 아는 정부 입장에서 이들의 항의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청년 세대들의 장시간 노동시간 기피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가 희망하는 1주일 노동시간은 36.7시간이었는데요. 연령대가 낮을수록 희망 노동시간이 짧아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세대 갈등은 연금개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2055년부터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칫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며 연금 불신론이 확산됐습니다. 이 우려는 윗세대에 대한 원망으로 번져 세대 갈등을 부추길 기세입니다. 매달 지불하는 연금 보험료가 윗세대의 연금을 지탱하는 수단에 그치고, 자신의 노후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불안이 팽배해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남성들로 구성된 모임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지난해 2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열린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에서 여성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젠더 갈등도 주목해야 할 이슈입니다. 최근 젠더 갈등은 '이대남'(20대 남성)과 '이대녀'(20대 여성)의 대립으로도 상징되는데요. 젊은 세대일수록 젠더 갈등이 치열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젠더 갈등을 가로지르는 쟁점은 '평등'입니다. 여성들은 아직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에 있다고 주장하고 남성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더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없다고 반박합니다.
 
이러한 충돌 양상은 정부 정책 안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이에 해당합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구조적 차별은 없다'고 선언하며 여가부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죠. 시간이 흘러 윤 대통령의 공약 실현 의지에는 변함이 없어 결국 여가부 폐지 문제는 국회까지 넘어왔습니다. 야당이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면서 여야는 아직 관련법 개정 관련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입니다.
 
노란봉투법 둘러싼 노사 갈등 뚜렷
 
노동 갈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법안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민주당 중앙당사를 기습 점거하는 강경책을 불사하는 등 간절히 법안 통과를 바라고 있으나, 재계가 "기업과 국민경제에 큰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반대하면서 극심한 노사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박래군(왼쪽 두번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지난해 9월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동 갈등은 노사뿐만 아니라 이념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국민의힘이 최근 이른바 '창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민주노총을 향해 "종북 간첩단에 놀아나고 북한 노동당의 2중대로 전락한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고 비판하자 민주노총은 "용산, 국정원, 수구 언론, 국민의힘이 엮어내는 환장의 티키타카,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는 등 갈등이 깊습니다.
 
지역 갈등도 고착화선거제 개편 '먹구름'
 
우리 사회 해묵은 지역 갈등도 여전합니다. 상대방에 한 표만 이기면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면서 '영남=국민의힘, 호남=민주당' 공식이 계속 통용되고 있습니다. 자기 지지자만 확보하려는 형태의 정치가 십수 년간 반복되면서 화합보다는 대립이 당연시되는 구도가 고착화됐습니다. 지역 갈등을 깨기 위해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원 정수를 기존 300명에서 350명으로 늘리는 방안 등이 포함된 선거제도 개혁 의지를 피력한 상황이지만, 여야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여야는 전날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의결했는데 기존(300석)대로 의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사회학회장인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지와 한 통화에서 "최근 사회 내 다차원적인 갈등이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갈등이 중첩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며 "예컨대 남녀 갈등과 내·외국인 갈등이 겹친다든지 결혼한 이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여성 성폭행 피해 등이 그 사례"라고 진단했습니다. 설 교수는 "인간이 사회를 살다 보면 갈등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갈등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는 점"이라며 "정부·정치권은 당연하고 시민들도 이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광연·윤혜원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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