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윤 대통령, "참모들이 준 답"조차 참고 안했다니…

입력 : 2024-02-13 오전 6:00:00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내·외 메시지를 내놓는 가장 큰 '무대'는 셋 정도가 손에 꼽힙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신년 기자회견과 3·1절 경축사, 8·15 경축사를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한 중·장기 구상을 비롯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참모들은 보통 수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갑니다.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구상과 의중을 참모들에게 전달하고, 여기에 각 부처에서 제시한 내용을 덧붙여 초안을 만들면, 대통령과 참모들이 여러 차례 독회하면서 최종 연설문을 만듭니다.
 
신년 기자회견의 경우 3·1절 경축사, 8·15 경축사와 달리 기자들과의 문답이 진행되기 때문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과정이 추가됩니다. 사전 리허설도 진행합니다. 출입기자와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예상 질문을 미리 확보하는 과정에서 왕왕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지난 4일 녹화해 7일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을 두고 온갖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치의 진영화가 극심해지면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정쟁화하고 쟁점화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대담에 대한 비판은 그런 차원을 넘었습니다. 
 
KBS 녹화대담 계획이 공개된 뒤, 신년 생방송 기자회견을 개별 언론사 그것도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KBS와의 대담으로 대체해도 되는 것이냐, 3일간 전부 '마사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형식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는 진단(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원장)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공개된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사과 한마디 내놓지 않은 것을 비롯해 정작 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으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하자, KBS까지 십자포화의 대상이 되면서 편집 전 녹화 원본을 공개하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파동에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윤 대통령이 "참모들이 준비해 준 답이 아닌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했다는 부분입니다. 생방송 기자회견이 아니었는데도 시청률이 8.7%에 이를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큰 신년 대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참모들이 대통령의 뜻도 파악하지 않은 채 사전 준비를 하고, 대통령도 참모들이 준비한 내용을 참고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국내 사안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특히 외교 사안은 대통령이 한 번 입에 담으면 되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내용은 물론이고 표현과 수위 하나하나까지 예민하게 사전에 점검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이 매사를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119대 29로 참패한 부산 엑스포 유치전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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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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