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적 고질병, 쏠림현상과 FOMO

입력 : 2024-03-29 오전 6:00:00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한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표를 내며 의료대란이 우려됩니다. 앞으로 의사 수가 얼마나 더 필요하고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려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큽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방 의료원과 필수의료 분야에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지방 중소의료원에서는 높은 연봉에 주택까지 제공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합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분야는 급한 환자가 병원 찾아 헤매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됩니다. 의사 인력이 수도권의 인기 분야로 쏠려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말입니다. 
 
현재 의대는 대학 입시에서 최정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과계열 학생들은 성적순대로 의대에 지원하고 그다음에 이공대를 선택합니다. 인재의 블랙홀이라 부를 정도로 의대 선호도가 심한 상황에서 정원을 대거 확대하면 의대 광풍이 불어닥칠 겁니다. 이전에는 의대 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중상위권 학생들도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며 의대 선호 경향이 확산될 겁니다. 이처럼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의 공급이 늘어난다고 해서 지방 의료원과 비인기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이 해소될 것인지 의문입니다. 의사 공급이 늘어날수록 수도권 인기 분야에서의 개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입니다. 지방 의료원에 가거나 비인기 분야로 개업하는 것은 낙오자의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부 잘하고 성공가도만 달려온 사람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지요.
   
모두가 최고만을 향해 몰려가는 쏠림현상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불균형과 갈등의 골을 깊이 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성적과 서열로 매겨지는 사회에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인구는 감소해도 정상을 향한 압박은 거세기만 합니다. 출생아 수가 2012년 48만명에서 2023년 23만명으로 10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사교육 열이나 입시 경쟁이 완화되었다는 징조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 지원자 수는 줄었지만, 상위권 대학의 진학은 여전히 좁은 문입니다. 앞으로 학령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과 학생이 몰리는 대학의 격차는 더 커질 것입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취업 시장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입사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지만, 중소기업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부동산과 주거에서의 쏠림현상도 심각합니다. 지방소멸은 주거지역의 쏠림으로 인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정상은 강남 아파트입니다.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라간 강남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고 그 열기가 수도권으로 확산되며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갑니다. 지방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이 강남 아파트를 매입하며 다시 강남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려 부동산 투자 사이클을 가속화합니다.
 
강남 아파트가 부동산 투기 진원지라고 규제하면 공급이 줄어 가격이 더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규제를 풀어 공급이 늘면 강남 아파트의 파급효과가 더욱 커집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제입니다. 역대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고 별수단을 다 써도 실패한 것은 부동산 쏠림현상의 종점이 강남 아파트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에서도 쏠림 현상이 과열을 불러일으키지요. 비트코인이 바로 그 예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넘어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소비에서의 대표적 쏠림현상은 명품 구매입니다. 우리 소비자의 명품 사랑은 유별납니다. 한국인의 1인당 명품 구매금액은 미국과 중국을 크게 앞질러 세계 1위를 자랑합니다. 명품매장에 일찍 들어가기 위해 백화점 오픈런하는 장면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경제 분야에서 나타나는 쏠림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증상입니다. 쏠림현상은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숱한 굴곡의 역사를 겪으며 군집행동이 안전하고 유리하다는 경험을 학습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시대적 유행에 편승해 부동산이 오를 때 집을 사고 주식이 오를 때 주식에 투자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대세에 끼지 않고 남들과 다른 편에 설 때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봅니다. 쏠림현상을 까보면 소외를 두려워하는 공포심(FOMO, Fear of Missing Out)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 하고 있으면 낙오되고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도 내 자녀가 쏠림현상의 굴레에 갇혀 스트레스받으며 사는 것도 싫고 군집행동에서 소외되어 낙오자가 되는 것도 싫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집단자살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심각한 저출산이 쏠림현상과 소외공포에 있다니 정말로 무서운 한국적 고질병입니다. 불치병으로 사망 선고받은 시한부 운명의 대한민국, 과연 누가 구원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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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