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사실상 20여년 만에 여의도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해 0석으로 총선을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오는 5월 말이면 정의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수에서 차이가 나더라도 한때 원내 3당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던 정의당은 왜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을까요? 토마토Pick은 대표 제3지대 정의당의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20년 만의 원외 퇴출
국민은 정의당 외면했다
정의당의 위기는 총선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은 단 2.37%. 이후로도 당은 2년간 전혀 반등하지 못했습니다. 6.1지방선거에서는 진보당에도 밀리는 등 참패했습니다. 오히려 세 번째 권력(개혁신당), 대안신당 당원 모임(새로운미래), 사회민주당(새진보연합) 등으로 사분오열했습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도태되는 양상은 더욱 짙어졌는데요.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례대표 의석 커트라인인 3%도 위태롭다는 결과가 나왔고 다른 제3지대 정당보다 열세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정의당도 이를 의식한 듯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제3지대 정당들을 모으는 선거연합정당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제안에 응한 것은 녹색당뿐이었고, 기본소득당 등 다른 소수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더불어민주연합)에서 총선에 나섰습니다.
날개 없는 추락
왜 신뢰 잃었나
정의당은 오래전부터 하락세를 겪었으며, 결국 위기를 딛고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번 총선 참패도 그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왜 이런 하락세를 겪었을까요? 국민들이 정의당을 뽑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지만 주로 제기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 내홍 : 정의당은 외부보다 내홍으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2021년 김종철 대표는 같은 당 의원을 추행했다는 의혹으로 대표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청년정의당 대표가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고 2차 가해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당의 다른 인사에게 의원직을 승계하기 위해 중도 의원직 사퇴를 하는 등 당원들을 실망시키는 사건들이 반복됐습니다.
-민주당 2중대 :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조 전 장관의 장관직 임명에 대해 부적격에서 적격으로 선회한 후 생겼는데요. 이어 2022년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가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자 검수완박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문제는 2중대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이 노동자나 성평등 등 정의당이 주로 내세우던 의제들은 뒤로 밀려났다는 것입니다.
-제3지대 속출 : 이번 총선은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 등 제3지대가 난립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조국혁신당은 진보진영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미래와 녹색정의당의 표를 흡수했습니다.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지만 민주당의 대안정당은 되지 못했고, 그 자리를 뺏김으로써 존재감마저 상실했습니다.
-위성정당 : 정의당은 21대 총선 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추진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소수정당이던 정의당에 비례의석 하나가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준연동형 비례제가 제도화하자 거대양당은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정의당을 포함한 소수정당은 그 몇 없는 비례의석까지 양당에 뺏기는 양상이 됐습니다.
-흐릿해진 정체성 : 정의당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요. 2010년대 후반 들어 페미니즘과 기후위기 등으로 정체성을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젠더갈등이 극에 치닫던 시점에서의 페미니즘 의제는 지지세 확장보다 갈등만을 초래했고, 기후 문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정체성은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습니다. 이는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새 얼굴의 부재 : 정의당이 원내에 입성한 뒤로 진보정당의 얼굴은 심상정과 노회찬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10년이 넘도록 두 사람을 대신할 새로운 얼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년 정치인 류호정 전 의원 등을 새 얼굴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당 분열만 초래했습니다.
여의도 떠나는 정의당
진보정당 계보 어쩌나
정의당은 2012년 창당했지만 민주노동당의 실질적 후신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에 이어 총선을 앞두고 합당해 완성한 녹색정의당까지 내려오는 게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 역사인데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획득한 이래 진보정당은 항상 총선에서 일정 의석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심상정 녹색정의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전원이 낙마했고 비례에서도 득표율 2.14%로 비례의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진보정당 총선 계보
-2004년 17대 : 민주노동당 10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
-2008년 18대 : 민주노동당 5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3석)
-2012년 19대 : 통합진보당 13석(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
-2016년 20대 : 정의당 6석(지역구 2석, 비례대표 4석)
-2020년 21대 : 정의당 6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
-2024년 22대 : 정의당 0석
기본소득당·진보당 원내 입성
진보정당 맥 끊기지는 않는다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난다고 해서 국회에서 진보정당의 맥이 완전히 끊기는 것은 아닙니다.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형태로 국회 잔류, 혹은 입성한 의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 새진보연합 2석(기본소득당 용혜인, 사회민주당 한창민), 진보당 3석(지역구 1석, 비례대표 2석)입니다. 위성정당 존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 자체를 말살하는 행위이기에 많은 비판이 따르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인데요. 이들은 지금까지 국회에서 정의당이 맡았던 노동이라는 의제를 떠안아야 합니다. ‘민주당 2중대’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당면 과제입니다. 정의당은 몇몇 정치 현안에서 민주당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듣고 색채를 잃었는데요. 이들은 위성정당을 함께함으로써 정의당보다 더 민주당과 가까운 관계로 의정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국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2중대 꼬리표를 떼고 독자적인 존재감을 보여야 합니다.
원외 밀려난 정의당
그래도 ‘후원금 가득’
정의당은 한동안 이번 참패에 대한 수습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정의당은 우선 남은 기간 내 전세사기 특별법 등 입법활동에 충실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것인데요. 그 외에도 여러 과제가 산적했습니다. 우선 선거 패인을 성찰하고 향후 방침을 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의당을 지탱했던 심상정 전 원내대표의 자리를 메울 새 인재 발굴도 중요합니다. 그럼 과연 정의당은 4년 후 재기할 수 있을까요? 장혜영 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이번 총선에서 낙선 후 후원금이 몰려들어 사흘 만에 3억원의 정치후원금 한도를 채웠습니다. 여야의 극단 대립구도로 인해 선택받지 못했을지언정 정의당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