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 막으면 인력난 해결?…"처우가 문제"

입력 : 2024-05-09 오후 4:46:18
[뉴스토마토 조성은 기자] 중소기업계가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허가제(E-9) 적용 업종을 확대해달라고 나선 가운데, 중기 인력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은 고용허가제 적용이 아닌 '열악한 처우 개선'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8일 섬유와 호텔 등 관광·마이스 중기업계는 정부에 외국인력의 고용 허용 업종과 사업장별 쿼터를 넓혀 노동력 이탈을 막고 인력 수급량을 늘려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중소사업장이 정부로부터 고용 허가를 받아 비숙련 외국인력을 고용하는 제도입니다이 제도를 이용하면 빈 일자리를 신속히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어 중소기업의 인력난의 타개책으로 일컬어집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11만여명의 비숙련 외국인력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음식점 △임업 △광업이 추가되고 △조선업에 별도 쿼터가 더 배분되면서 해당 업종의 사업주들도 오는 7월부터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용허가제 적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은 업계 관계자들이 본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업종도 제도에 편입시켜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게 된 배경입니다.
  
중소기업의 인력수급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 한도와 사업장별 노동자 쿼터를 확대하는 정책기조를 지속해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정 권역·업종 내에서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지난해 10월19일부터 신규 모집돼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초 고용된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정부는 지방 중기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해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라는 입장입니다. 
 
"인력난 해소하려면 처우개선부터"
 
하지만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의 '처우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원 감사는 "근로조건 등 고용환경이 나쁜 사업장에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지속 공급되는 상황에서 기업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왜 중소기업이 내국인들에게 외면받게 됐는지 돌아보고 고용환경의 질적 개선을 도모해 인력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인력난의 본질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인력 이탈 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을 포함한 열악한 처우는 중소기업 기피 현상의 주 원인이자 사회의 해묵은 과제로 꼽힙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중소기업 재직자의 월평균 소득은 286만원으로 대기업 재직자(591만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고용노동부가 '2022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 비용'을 조사한 결과 상용 근로자 300명 미만 기업과 1000명 이상 기업이 근로자 개인에게 지급하는 월 법정 외 복지 비용은 각각 13만6900원, 48만9300원으로, 약 4배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격차는 '중소기업 기피'로 이어집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의 발표는 이러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중기중앙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체 1200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살펴보면 내국인의 중기 취업 기피는 2022년 74.8%에서 2023년 89.8%로 심화됐습니다. 상의의 '청년세대 직장 선호도 조사'에선 청년 구직자의 64.3%가 '대기업을 선호한다'고 답한 반면 중소기업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15.7%에 그쳤으며, 청년들은 '직장을 선택할 때 임금 및 복지 수준을 1순위로 고려(86.7%)'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처우 문제로 내국인력 수급에 실패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외국인력은 노동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됩니다. 문제는 열악한 처우는 여전한 상태에서 기업이 외국인력 수급 확대만 외치는 통에 어렵게 유치한 외국인 노동자들마저 사업장 이탈, 즉 '사업장 변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겁니다. 통계청의 '2023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 외국인 노동자의 12.3%가 낮은 임금(39.2%)과 힘들고 위험한 업무(19.4%)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에 노출된 노동자도 28.6%나 됐습니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5년간 사업장 규모별 외국인 근로자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액은 총 567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고용부가 같은 해 발표한 '2023 산업재해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을 보면 외국인 산업재해자는 2017년부터 증가세를 거듭해 2022년 8171명을 기록했습니다. 사망자는 무려 108명에 달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법이라는 족쇄에 묶여 사업장 이동을 통제 당하고 있습니다. 
 
"사업장 변경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인권 침해 소지"
 
현행법은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노동자의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사업장의 휴·폐업 시 △사업주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 강행 시 외국인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에 해당할 때에만 사업주의 동의 없는 사업장 변경을 허용합니다.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을 당해도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중대재해나, 임금의 30% 이상을 2번 이상 주지 않은 경우에 국한해 이직이 가능합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다치거나 인권침해 등의 이유를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사업주가 거부하면 이직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고용허가제가 사업주의 편익만을 고려한 '합법적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 고용부에 내년 12월까지 사업장 변경 사유를 업무상 재해, 질병, 임신, 출산 이외 사회통념상 사정이 있는 경우 등으로 폭넓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윤 감사는 "사업장 변경 제한은 헌법에서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차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특정 지역 내 사업장에 묶어두면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문화가 고착화돼 국내 고용환경이 더욱 열악해져 인력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처우 개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중기중앙회가 업종별 중소기업협동조합 내 외국인력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고용허가제 및 외국인력 활용 설명회' 진행하고 있다.(사진=중기중앙회)
 
조성은 기자 sech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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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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