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22대 국회 지상과제 '개헌'

22대 국회 개원, 20여일 앞으로…국회의장 후보자들 '개헌' 적극적
5년 단임제, '정책 연속성' 결여…양극화·젠더 등 경제·사회권까지

입력 : 2024-05-10 오후 4:43:46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포스트 87년 체제' 논의를 위한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5공화국 종식의 결과물인 87년 헌법이 다원화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내용적 민주화'를 담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찬란한 역사는 계승하되, 제6공화국 헌법의 태생적 한계만은 극복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 권력분산부터 저성장·양극화 극복, 빈부·젠더 갈등 해소 등 87년 헌법에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7공화국 헌법 논의의 어젠다가 될 전망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3년 차를 맞은 가운데, 22대 국회가 오는 30일 개원합니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인 민주당 소속 추미애 당선인과 정성호·조정식·우원식 의원(기호순) 모두 개헌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관련 논의가 탄력을 받을 전망인데요.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한계에 봉착한 '87년 체제'에 대한 보완적 계승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87년 헌법 '태생적 한계' 뚜렷…핵심은 '내용적 민주화'
 
우리나라 헌법은 지난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 공표 이후 1987년까지 총 9차례 개정됐습니다. 소위 '87년 헌법',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9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도입되면서 기틀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87년 헌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진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시간 동안 후진국에서 민주화와 경제선진국을 이룩한 유일한 나라 중 한 곳입니다. 그동안 전 세계의 환경은 크게 변했고,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더욱 발돋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저출생 고령화를 비롯해 양극화, 지역 격차, 정치 갈등, 복지 등 대한민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역시 수두룩합니다.
 
현행 헌법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정보화 등 새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국가 발전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마저 저해한다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때문에 더 나은 선진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로운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때마침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또다시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차기 국회의장에 도전장을 낸 후보들 역시 개헌에 적극적입니다. 추미애 당선인은 "22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정성호 의원은 "국회의장이 주도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고 풀어가야 한다"며 '4년 중임제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조정식 의원도 "22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어떤 형태로든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원식 의원 역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8년 7월17일 제헌 70주년을 맞아 제헌헌법과 개정헌법 등 대통령기록관이 소장해 온 헌법기록물 550매를 보존처리한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뉴시스)
 
'제왕적 대통령제' 한계 봉착…'정치 양극화' 가속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 등 사회 전반의 개헌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개헌국민연대 등 전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월 4·10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개헌'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크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실종되고, 정치권은 대권 쟁취를 위해 극단적 진영논리에 매몰되면서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특히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 5년 단임제 한계에 봉착하면서 현행 헌법이 가진 한계점이 고스란히 노출됐습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책임 있는 정책을 입안해 실행할 시간이 부족하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결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모두 '5년'이라는 단기간에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정책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국가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혔습니다.
 
더불어 경제·사회 등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제조항과 사회권 개정에 대한 요구도 개헌 당위성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예컨대 87년 개헌 때 신설한 헌법 제119조2항('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적정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및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위해 정부가 경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은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해석이 끊임없이 엇갈리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밖에 기후위기, 자치분권,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도 헌법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뒤따릅니다.
 
정재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행 권력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가 서로 중첩돼 상호 악화시켜 왔다"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 퇴행의 제도적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개헌은 원칙과 내용에 관한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확보하는 순차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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