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이명신 기자] ‘아직 신규 취항 계획도 잡히지 않은 종착지.’
항공업계의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이행 현황을 비유하자면, 이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끝내 도착해야 하는 곳이지만 미처 출발조차 못한 곳.
지난 2023년 9월 대한항공 관계자가 지속가능항공유(SAF) 실증 운항을 위해 인천발 로스앤젤레스행 화물기에 급유되는 SAF를 들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뉴스토마토>가 국내 항공·조선·방산업계의 RE100 이행률을 점검한 결과, 세개 산업분야에 속한 기업들 모두 RE100에 아직 가입도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나머지 주력 산업분야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해 이행률을 높여가고 있는 것과 대조됩니다. 세 업계는 당장은 RE100 대신, 친환경 원료 사용을 통한 ‘탄소 배출 저감 기술’ 개발 및 도입으로 탄소중립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항공기를 운항하거나 선박을 만들고 무기를 제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항공업계의 경우, 내연기관으로 운항하는 비행기의 특성상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높이기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국내외 항공사를 통틀어 RE100에 가입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특수성을 감안해도 향후 불이익을 고려하면, RE100 이행을 계속 늦출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에 국내 대표적 항공사들은 탄소 배출을 최대 80% 가까이 줄일 수 있는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에 초점을 맞춰 탄소중립에 나서고 있습니다. SAF는 폐식용유, 농업 부산물 등 친환경 원료로 만드는 차세대 항공유입니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유럽 내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SAF 2%를 혼합해서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2030년에는 그 비중이 6%로, 2050년에는 70%까지 올라갑니다. 정부도 2027년부터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에서 SAF 1% 혼합 사용을 의무화하기로 했습니다.
대한항공(003490) 아시아나항공(020560)은 선제적으로 지난해 8월부터 인천에서 하네다로 가는 노선에서 SAF 1%를 주 1회 급유하고 있습니다.
비중이 1%에 불과한 것은 SAF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탄소 배출 저감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싸서 의무 비율 이상으로는 구매가 어렵다”면서 “공항시설이용료(이·착륙비 등) 감면 등 정부 지원이 있으면 비중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항공 운송 관리 저널을 보면, 화석연료 기반의 제트 연료의 평균 가격은 톤(t)당 690달러(약 99만원)인데 반해, SAF는 원료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톤당 2821달러(약 400만원)에 이릅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선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생산 시설이 부족한 데다 원료 양이 제한적이라 단가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SAF 시설 짓는데 수조원이 드는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폐식용유 등의 양이 제한적이고, 최근에는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광옥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정유사에게 SAF 생산시설 구축 지원을, 항공사에는 SAF 구매 시 세액공제나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것이 RE100 일환인 SAF 도입 속도를 높이는 방향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생e ‘0%’…갈 길 먼 조선업계
항공업계와 마찬가지로 배를 만드는 조선사들의 경우에도 재생에너지를 쓰고는 있지만, 사용량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HD한국조선해양(009540)·
삼성중공업(010140)·
한화오션(042660)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최근 3년(2021~2023년) 동안 사용한 재생에너지 비중은 0%대였습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3년 총 149테라줄(TJ)의 에너지를 사용했는데 여기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0.2%(0.3TJ)에 그쳤습니다.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의 2023년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2TJ로 가장 높았고, HD현대미포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0.03TJ 수준이었습니다. HD현대삼호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0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도 0%였습니다.
HD현대미포가 지난해 12월부터 건조에 착수한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조감도. (사진=HD현대미포)
업계는 뒤늦게나마 자가발전 설비를 도입하거나, 재생에너지인증서(REC) 구매, 직접전력구매계약(직접PPA)을 확대하며 ‘탄소 저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RE100 이행 요구보다 탄소 저감 기술 개발·적용에 요구가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조선업계 이해관계자로부터 RE100 이행을 요구받은 사례도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업계 전반에서 아직 시급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인데, 전문가들은 RE100 이행을 마냥 방관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RE100 이행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행은 필수적”이라며 “수소·암모니아·태양광 등 자가발전을 이루는 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했습니다.
“특수성 이해되나 예외일 수 없어”
방산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업계의 총에너지 사용량 대비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1%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2023년 총 2011TJ의 에너지를 사용했지만,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0.5%(11TJ)에 불과했습니다. 같은해
LIG넥스원(079550)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0.49%였고,
현대로템(064350)과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방산업계는 주문생산 방식으로 사업장이 돌아가는 특수성으로 RE100 달성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RE100 이행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현대로템은 경남 창원공장 품질안전센터 건물 옥상에 연간 약 115메가와트시(MWh) 생산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했으며, 친환경 원료인 수소연료전지를 차세대 전차에 적용하기 위해 동력원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KAI도 현재 본사 8개 건물 지붕에 5.4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방산 업종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RE100 이행에서 예외일 순 없다고 지적합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RE100이나 ESG경영이 방산업계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며 “향후 유럽이 RE100 이행 등을 근거로 규제를 걸 수도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방산업계가 RE100이나 ESG경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라고 했습니다.<끝>
오세은·이명신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