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4조 넘게 사들였지만…자사주 매입, 주가 못 살렸다

삼성전자,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도 '5만전자'
KB금융·현대모비스, 자사주 매입 후 주가 '뚝'
투자여력 감소로 성장 '영향'…내재 가치 올려야

입력 : 2025-04-17 오전 6:00:00
이 기사는 2025년 04월 15일 17:34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2025년 1분기, 한국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4조5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3조4600억원 대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도 불구하고 주가 상승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많은 기업의 주가가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하락하며, 성장 전략 없는 자사주 매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주환원책만으로는 장기적인 주가 부양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15일 한국거래소(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자사주 매입 규모는 4조570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조4567억원에 비해 약 32% 증가한 수치로, 기업들의 주주환원 의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1분기 가장 많은 자사주 매입에 나선 기업은 삼성전자(005930)다. 매입 규모만 2조3411억원에 달한다. 뒤를 이어 KB금융(105560)이 5200억원, 현대모비스(012330)가 2357억원, 신한지주(055550) 2225억원, 하나금융지주(086790) 1962억원, 크래프톤(259960) 1232억원, 기아(000270) 1100억원, 셀트리온(068270) 1018억원 등이다. 이들 기업 모두 최소 1000억원이 넘는 자사주를 사들였다.  
 
삼성전자(사진=삼성전자)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도 '5만전자' 탈출 실패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3조487억원을 투입해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를 취득 소각했다. 매년 주주들의 주식가치 제고 요구가 쏟아졌던 만큼 올해는 매입 물량을 더 늘릴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5월16일까지 보통주 4814만9247주(2조6964만원), 우선주 663만6988주(3036억4220만원)를 사들일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와 관련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면서 "기업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앞으로도 자사주 매입 비중을 확대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주주환원에 힘쓰는 것과 달리 주가는 ‘5만전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 발표날 5만3500원을 기록한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5만6200원에 마감하면서 제자리 걸음하는 데 그쳤다. 주가는 지난해 11월14일 49900원까지 하락하며 ‘4만전자’로 전락한 뒤 반등세를 보였지만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에도 주가는 요지부동이다. 
 
이에 시장에선 최근 미국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 기본관세(10%)와 상호관세 적용을 면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자사주 취득이 주가 상승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더군다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6조6200억원으로 시장의 컨센서스를 크게 뛰어넘었음에도 주가는 ‘5만전자’에 머무르는 등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주주환원책 한계…장기적 투자 병행돼야
 
삼성전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사주 소각에도 주가가 오르기는 커녕 되레 떨어진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올 1분기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KB금융지주와 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인 예다.
 
KB금융지주는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발빠르게 대응하려고 5200억원 규모(640만1349주)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지난 2월5일 '주식 소각 결정' 공고 일정보다 1개월이나 서둘렀다. 그럼에도 주가는 14일 기준 7만6100원으로 마감하면서 지난해 말 8만2900원 대비 8.2% 하락했다.
 
업계에선 KB금융지주가 이익잉여금 감소를 감내하면서까지 주주환원에 나섰지만, 결과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만 하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CET1 비율은 금융사가 위기 상황에서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의 정도를 말한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지주들의 CET1 비율은 KB금융지주 13.51%, 하나금융지주 13.13%, 신한금융지주 13.03%, 우리금융지주 12.13% 순이었지만, 자사주 매입에 따라 순위는 뒤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2월13일 120만주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결정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가 꺾이며 공시 당일 24만5000원에서 14일 종가기준 23만5000원으로 4% 하락했다.
 
현대모비스는 매년 수천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왔지만 최초 발표 당시에만 잠시 오름세를 보였을 뿐, 장기적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019년 3225억원, 2020년 2348억원, 2021년 4286억원, 2022년 3132억원, 2023년 1465억원에 이어 지난해까지 6년간 총 1조6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했다. 그러나 주가는 수 년째 박스권에 머물고 있으며, 3~6% 수준의 낮은 이익률로 인해 주주환원정책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주주환원책으로 활용되지만, 근본적인 성장 전략 없이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의 내재적 가치가 개선되지 않으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침체된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을 막는 데 그칠 뿐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불확실해진 가운데 SK하이닉스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자사주 매입효과가 상쇄됐다. KB금융은 자사주 매입으로 CET1 비율을 끌어내리며 재무 건전성에 영향을 미쳤고, 현대모비스는 낮은 이익률과 글로벌 시장 둔화로 주가 상승 동력을 얻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주가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호재로 해석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 확대는 그만큼 투자여력이 감소한다는 의미"라며 "대표적으로 아마존과 테슬라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소홀한 편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주가에 당장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가 병행돼야 밸류업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홍준표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