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인공지능(AI) 반도체 H20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앞서 H20 수출 규제가 보류될 것이라는 외신 발 보도가 있었으나 정반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수혜를 예상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15일(현지시각) 엔비디아는 공시를 통해 미국 정부가 지난 9일 엔비디아에 중국 및 일부 국가로 H20을 수출할 경우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조치는 지난 14일부터 무기한 시행됩니다. 엔비디아는 이번 수출 제한 조치로 회계연도 1분기(2~4월)에 5억 달러(약 7조85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H20이 중국 내 슈퍼컴퓨터나 민감한 AI 시스템 개발에 사용될 위험이 있다”라고 판단해 이번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H20은 연산 능력은 낮지만, 고속 메모리 및 기타 칩과 연결할 경우 AI 모델 훈련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지난 1월 선보인 저가형 우수 AI 모델 ‘R1’에 H20이 주요 훈련용 칩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미국은 기존에도 중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수출을 제한해 왔습니다. 미 정부는 2022년 10월 외국 직접생산 규정(FDDR)을 통해 미국 및 주요 반도체 생산국가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습니다. 중국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군사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에 엔비디아는 중국 맞춤형으로 H20 등 저사양 칩을 생산해 수출해 왔습니다.
한편, 앞서 H20 규제 보류 보도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이뤄지면서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미국 방송사 NPR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으며, 그 뒤 미국 정부는 중국용 H20 AI 칩의 규제 계획을 보류하기로 입장을 바꿨다”고 알렸지만, 오늘 엔비디아의 발표로 해당 보도는 오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장 중국의 AI 투자 붐에 따른 수혜 기업으로 지목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H20에는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가 탑재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이를 공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5세대 HBM3E 품질검증을 아직 받지 못해 저사양 칩 판매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발표로 엔비디아가 준비 중인 차세대 중국 수출용 AI칩인 B20도 규제 대상이 될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B20에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주요 공급하고 있는 HBM3E가 탑재됩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중국 기술을 최대한 억제하고 지연시키는 게 미국 전략이다 보니 B20 규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향후 국내 기업에게도 중국 수출 압박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