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문명과 라오인 이야기)⑦라오 여성의 4번째 청혼

라오스 정착과 함께 시작된 이웃과의 특별한 인연
예고 없는 청혼과 그 뒤에 찾아온 어색한 거리감

입력 : 2025-04-21 오전 6:00:00
동남아시아인도차이나 반도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1. 라오스의 첫 집 
 
라오스에 들어온 뒤로 더부살이 생활을 이어왔다.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의 장기 숙박자 신세에서 벋어나고자 셋집을 얻으러 다녔다. 가진 게 적은지라 발품을 팔고 또 팔아 내가 원하는 조건에 딱 맞춤한 듯한 집을 찾아냈다. ‘황금의 언덕’이라 불리는 폰캄 마을에 위치한 집이었다. 나이 마흔의 집주인 드안 여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수도 위양짠의 중심인 개선문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방 4개에다 너른 마당을 갖춘 대지 200평의 단독주택이었다. 혼자였지만 이렇게 큰 집을 구한 건, 방 한 칸을 내 살림방으로 하고 나머지는 홈스테이로 돌릴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자에게 사글세를 돌리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라오스에서 가장 큰 자동차 딜러 회사에서 1년 동안 쓸 승합차 한 대를 선뜻 계약해버렸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인천-비엔티안 직항 노선이 운항되고, 라오스 소개 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자유여행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홈스테이를 하려는 곳은 배낭여행자들이 몰리는 메콩강변이나 여행자거리와는 한참 동떨어진 곳이라 입지가 좋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인 대부분이 3박5일이나 4박6일로 와서 수도에선 잠만 자고 다른 행선지인 ‘왕위양’이나 ‘루왕파방’으로 떠나는 여행 일정이라 위양짠은 여행자들이 기대하는 게 거의 없었다. 
 
내 경쟁력은 심야에 공항에서 픽업을 해 숙박을 한 뒤, 맛집에서 아침을 먹게 하고 다음 행선지로 떠날 수 있는 정거장까지 바래다주는 원스탑 서비스였다. 
 
머리가 아파 파스를 붙인 아이. 사진=우희철 작가
 
2. 2014년 라오스 수도의 변두리 
 
시내에서 폰캄을 가자면 고작 6km 거리였지만, 가는 도중 너른 들판에 논들이 펼쳐져 있고, 포장길이 끝나 비포장을 타고 들어가야 했다. 도시를 벗어난 라오스의 변두리는 우리네 농촌과 다를 바 없었다.
 
집주인 드안은 나의 철저한 감시자였고, 내 이웃들은 드안의 충실한 정보원이었다. 심야에는 동네 개들까지 나서서 이웃들에게 나의 들어오고 나감을 알려주곤 했다.
 
내가 사는 큰 집의 장점은 넉넉함이고, 단점은 청소였다. 마당이 넓고 망고, 잭프루트, 양귀비가 좋아했다는 과일나무가 경계목을 이루고 있어 낙엽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게으른 나도 어쩔 수 없이 새벽형 인간으로 마당쇠가 되어갔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근처 절에 살던 고양이가 독립을 해 내 집을 사냥터로 삼게 됐다. 이 고양이의 3색 새끼를 난 얼굴만 하얗다고 ‘나카오’란 이름을 지어줬다. 이 고양이에게 먹이까지 주게 되면서 난 적적할 틈이 없게 됐다.
 
3. 집주인 드안  
 
그 집에서 산 지 1년이 지나 재계약 후 드안의 출입이 잦아졌다. 드안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짝으로 가져오고 앰프를 켜 음악을 크게 틀고 술을 먹자고 내게 보채기 시작했다. 라오스에 들어와 술을 끊은 난 일행들과 술잔을 부딪치진 않았으나 흥이 깨지지 않도록 추임새를 넣어줄 아량은 있었다. 
 
드안은 때떄로 자식들을 앞세웠다. 그에겐 네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장남은 이미 성인이라 자주 오진 않았다. 맏이만 아들이고 그 뒤로 딸이 셋이다. 딸 둘은 5년제 중학교에 다니고 막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상태였다. 장남은 첫 번째 남편, 딸 둘은 두 번째, 막내는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었다. 세 번째 남편과는 얼마 전 갈라섰단다. 드안은 빈손으로 내 집에 오는 법이 없었다. 홀아비와 다를 바 없는 난 혼밥이 다반사라 편하게 한 끼 때우는 형편인데, 드안이 고기나 생선을 곁들이면 난 냉장고를 털어 한국 반찬으로 구색을 맞춰 조촐한 파티 느낌을 냈다.
 
드안은 나와의 관계가 가까워지자 슬슬 자신의 얘기를 털어놨다. 드안의 집안은 라오스의 전통주를 빚었다는 내력, 3번의 결혼을 통한 전 남편들과의 관계 등을 공개했다.
 
드안은 친구와 함께 그리고 자식과 함께 오더니 급기야 혼자 오기 시작했다. 내가 현관 베란다에 화분을 놓아두는 걸 좋아하자 올 때마다 분재 같은 걸 들고 왔다. 어느 날 내가 외출 후 돌아오니 화분으론 성이 차지 않았는지, 마당 양쪽이 파헤쳐져 있었다. 드안이 맏아들과 채송화 화단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재계약을 포기하고 떠나면 그 화단은 드안의 것이니 딱히 크게 말릴 이유도 없었다. 
 
드안은 어느 순간부터 은근히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땅은 어디에 몇 헥타르, 어디에 몇 백평 등. 집은 내가 사는 곳, 현재 자신이 사는 곳, 그리고 다른 곳에 한 채가 더 있단다. 난 열심히 “부자여서 좋겠다”는 추임새를 넣어줄 뿐이다. 
 
아이들과 장에 가는 엄마. 수도 위양짠 콕싸앗 마을. 사진=김재용 작가
 
4. 청혼 
 
드안이 명절을 앞두고 자신이 사는 집으로 점심 초대를 했다. 내가 어떤 자리인지 따져 묻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드안의 집에 도착하니 드안, 그의 어머니, 그의 외할머니 3대가 함께 있었다. 
 
드안은 내게 청혼을 했다. 그동안의 과정이 청혼을 위한 ‘빌드업’이었단 걸 깨닫지 못한 눈치 없던 난 반사적인 거절을 하고 말았다. 내게 한국에 아내와 딸이 있단 걸 모를 리가 없다. 드안이 자기 얘기를 할 때 답례로 나도 사적 영역을 공개하는 게 당연했다. 드안은 내가 아내와 딸이 있단 사실에도 상관없단다. 난 반백년을 살고서도 ‘혼인은 인생의 중대한 일이니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해 보자’와 같은 상투적 임기응변을 떠올리지 못했단 자책과 드안에 대한 미안함으로 어떻게 자리를 수습하고 나왔는지도 모르게 귀가했다. 
 
5. 어색한 종극 
 
난 한밤중 마당으로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지은 죄가 있어 내다볼 용기를 내지 못한 난 커튼 뒤에 숨어서 트럭에서 목재가 쏟아지는 걸 지켜만 봤다. 드안은 나무를 다 쏟은 뒤 내 기척이 없자 맥주 한 깡통을 목으로 들이붓고는 발로 밟아 찌그러트리고 떠났다.
 
난 시간이 흘러 드안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드안에게 마당에 쏟아 낸 목재에 대해서 물었다. 
 
“오빠 옆에 집 짓고 산다고 하려고 가져갔었지”
 
난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드안에 대해 풀 수 없는 미안함과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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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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