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기후변화·외래종 확산에 꿀벌 생태계 '이중 위기'

한국 WWF, 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발표

입력 : 2025-04-30 오전 9:10:02
꿀벌의 군집 생활 모습. (사진=WWF)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기후변화와 외래 침입종 확산으로 우리나라의 꿀벌 생존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이번 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기후위기가 꿀벌 군집의 생존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생태계 균형과 식량안보까지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번 보고서  '기상 변동성과 침입 포식자의 확산을 통해 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 WWF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공동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보고서는 “꿀벌이 더 이상 안정된 계절 주기에 의존할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뉴노멀' 시대에 진입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폭염·폭우가 꿀벌 군집 붕괴 초래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변동성이 꿀벌 군집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꿀벌은 벌통 내 온도를 약 34~35℃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유충의 생육과 여왕벌의 산란을 돕는 등, 정교한 온도 조절 능력을 갖춘 곤충입니다. 하지만, 폭염과 폭우, 급변하는 날씨는 이러한 자율 조절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RFID 칩을 활용해 벌통 안팎의 기상 조건과 꿀벌의 비행 패턴을 실시간 분석한 결과, 꿀벌은 기온 20~30℃, 풍속 0~4m/s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강수나 높은 습도에는 활동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기상 변화가 꿀벌의 생존과 먹이 확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보고서는 꿀벌 군집 붕괴(CCD, Colony Collapse Disorder)가 심화될 경우, 자연이 제공하던 수분(受粉) 활동, 생물다양성 유지, 식량 생산 안정성 등 필수 생태계 서비스가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와 와이오밍대학교 공동연구팀은 2024년 발표한 연구를 통해 꿀벌이 날개짓으로 벌집 내부를 식히지만, 40℃를 넘는 폭염에서는 체온 조절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수분이 부족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질 경우, 냉각 작용에 필요한 물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벌통 내부가 ‘찜통’처럼 달아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고온 현상은 꿀벌 유충의 정상적인 발달을 어렵게 하고, 여왕벌의 생식 능력마저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벌통 안에서는 일벌이 급격히 줄고, 여왕벌과 유충만 남게 되며 결국 ‘군집 붕괴 현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후 회복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라는 이번 보고서의 메시지는 의례적으로 넘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등검은말벌 모습. (사진=©observation.org, Henk Wallays, WWF)
 
외래종 ‘등검은말벌’ 전국 확산…꿀벌 생존에 추가 타격
 
보고서는 또 다른 위협으로 외래 침입종, 특히 등검은말벌의 전국적 확산을 지목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외래종의 서식 가능 지역을 북상시키면서, 기존 남부 지역에 국한됐던 등검은말벌이 서울, 강원도, 수도권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서울을 포함한 9개 지역에서 등검은말벌 포획 조사와 함께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 Global Biodiversity Information Facility) 및 네이처링(Naturing)의 시민 과학 데이터를 활용해 등검은말벌의 확산 경향과 지역별 출현 양상을 분석했습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사례와의 비교 분석과 기후 기반 모델링을 통해 여왕벌 출현 시기 및 잠재 서식지를 예측하고, 확산을 촉진하는 기후 및 지형 요인을 정량적으로 도출했습니다. 그 결과, 등검은말벌은 꿀벌의 번식과 수분 활동이 활발한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피해를 집중시키며, 꿀벌 군집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양봉업계는 꿀벌 개체 수 감소, 수분 부족, 방제 비용 상승 등의 삼중고를 겪고 있으며, 농업과 식량 공급망 전반에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WWF는 “등검은말벌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조기 방제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꿀벌이 생태계 복원력과 식량안보를 위한 핵심종임을 인식하고, 수분(受粉) 매개자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WWF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꿀벌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를 널리 알리고, 과학 기반 생태 보전 정책 마련과 시민 인식 제고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WWF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꿀벌의 위기는 곧 농작물의 위기
 
꿀벌의 위기는 곧 농작물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전체 식량작물의 약 70%는 꿀벌의 수분(受粉) 활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수확량은 감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식량안보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3월, 미국 내 상업 양봉업자들이 겨울 동안 평균 60% 이상의 꿀벌 손실을 보고했으며, 일부는 양봉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전문가들은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기후적응형 생태보전 정책 ▲살충제 규제 ▲서식지 복원 ▲다양한 꽃식물 조성 등의 종합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꿀벌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식탁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기후변화가 꿀벌 군집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표지. (사진=WWF)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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