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협상 카드로 ‘조선업 협력’을 꺼내면서, 한일 간 미 해군 함정 MRO(보수·수리·정비)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일본에 집중돼 있던 MRO 시장에서 국내 조선사들이 점유율을 조금씩 넓히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수요 대응을 위한 지원에 나설 경우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왼쪽 세 번째)과 한화오션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각) 일본 매체 닛케이 아시아는 일 정부가 미국의 관세 완화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조선업 분야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지난 1일 아카자와 료세이 일 경제재생상이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과 2차 관세 협상을 진행한 이후 나온 대응입니다. 일 정부가 이같은 협력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은, 미국 측이 협상 과정에서 조선업 분야 협력을 요청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이 요청한 조선업 협력 분야는 MRO에 집중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최근 일본과 한국을 잇따라 방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미국이 조선업 재건을 선언한 가장 큰 배경은, 해군력 복원과 중국 해군 견제에 있습니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중국 군사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 함정 보유국이며, 2030년에는 미 해군을 압도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미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선박 시장 세계 3위인 일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일본이 조선업 협력을 협상 카드로 내세우면서, MRO 수주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MRO 시장은 그간 일본이 주도해온 영역이지만, 최근 국내 조선사들이 점유율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9월 미 보급함 ‘윌리 쉴라’의 정비 사업을 수주한데 이어, 같은 해 11월 미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의 정기 수리 계약도 따냈습니다. HD현대 역시 미 최대 군수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2~3척 규모의 MRO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비 일정 지연과 생산성 저하, 정비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 한계 등 일본 조선사의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일본은 80여년 전부터 미 7함대가 주둔한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미 해군 MRO를 전담해온 바 있습니다. 일본 조선사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경우, 국내 조선사들의 진입 시도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다만 향후 수주 전망이 긍정적이어서 비관할 일만은 아닙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일본 조선사는 이미 일정이 상당 부분 채워져 있어, MRO 수요를 추가로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면 국내 조선사는 ‘슈퍼 사이클(호황기)’에 진입한 상태로, 수주 여력이 충분해 향후 시장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