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전 세계 저성장 공포가 짙어졌습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통상정책 불확실성으로 세계 경제는 물론, 각 국의 성장 둔화 경고음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7%까지 낮춰 잡았는데, 2000년대 들어 네 번째로 낮은 저성장 기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전쟁을 벌여 온 미국과 중국이 관세 유예 조치에 합의하면서 세계 경제도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대경연 "2000년대 들어 네 번째로 낮은 저성장"
대경연은 13일 '2025년 세계 경제 전망(업데이트)'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는 점진적 회복 흐름을 이어가겠지만, 무역 질서 격변과 통화정책 불확실성, 역자산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성장세는 둔화할 것"이라며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7%로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망치(3.0%)와 비교하면 0.3%포인트 낮은 수준입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전망보다 0.3%포인트 낮춘 2.7%를 제시했는데, 2000년 이후 기준으로 볼 때 2001년 닷컴버블 붕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그만큼 세계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습니다.
대경연의 올해 세계 경제 전망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예측치인 3.1%,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상인 2.8%보다도 각각 0.4%포인트, 0.1%포인트 낮습니다.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된 배경엔 미국의 전방위적 관세 인상과 무역전쟁 격화가 세계 교역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 역 자산효과에 따른 소비·투자 위축, 부채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각 국 성장세 둔화…미국, 큰 폭 하향 조정
주요국의 성장 역시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특히 세계 경제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지역이 코로나 이전 평균 성장률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우려를 더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성장 둔화가 두드러진 가운데, 대경연은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2.1%에서 1.3%로 0.8%포인트나 끌어내렸습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고율 관세 부과 등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동반 위축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국과의 무역 갈등 장기화로 기존 성장률 전망치 4.5%에서 4.1%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소비 진작, 인프라 투자 확대 등에도 불구하고 투자심리 위축과 내수 회복 지연이 성장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역내 정치 불안에 직면해 올해 0.8% 성장에 그칠 전망입니다. 일본 역시 개인소비 회복세에도 수출과 기업 투자 부진으로 0.6%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 인도는 6.4% 성장률로 선진·신흥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전체적으로 세계 경제 하방 압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망된다"며 "전 세계가 예년만 못한 전반적인 저성장 기조가 뚜렷하다. 미국, 유로지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인도 등 신흥국도 과거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중 합의에 일시적 안도…해결책 '역부족'
다만 대경연은 이번 경제 전망에서 미국이 보편관세 10%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 협상을 통해 당초 거론됐던 '100%대 상호관세'보다 낮은 수준의 세율을 적용한 것으로 전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중은 전날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중국 상품에 매긴 관세는 145%에서 30%로,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겼던 보복관세 125%는 10%로 낮아졌습니다.
세계 경제는 미·중의 관세 유예 조치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가 무역전쟁의 긴장 수위를 낮추긴 하겠지만, 양국 간 관계 악화를 완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가 뒤따릅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번 합의는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는 "미·중 무역 협상은 롤러코스터처럼 진행될 것"이라면서 "시장은 일시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지만 숲(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윤 실장은 "어제 발표된 미·중 무역 합의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관세율이 조금 더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차원에서 성장률 자체를 바꿀 만큼은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오른쪽)과 윤상하 국제거시금융실장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 세계 경제전망(업데이트)'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