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오래 전 우리 생명의 기원이 된 폭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납니다. 이번엔 우리의 종말을 불러올 거대한 폭발입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발전해 온 인류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은 그간 수많은 창작물에서 다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어낸 이후, 이러한 설정은 단절과 치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2019년 발매돼 팬데믹에 따른 단절의 아픔을 치유해준 오픈월드 액션 게임 '데스 스트랜딩'의 후속작 '데스 스트랜딩 2: 온 더 비치'가 26일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S)5로 독점 발매됩니다.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이번에도 사람 간의 연결에 주목하며 연대의 가치를 조명했습니다.
전작에서 미국을 하나로 연결한 샘이 루에게 입맞추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지=SIEK)
단절된 세상, 연대로 회복하다
DS2를 논하기 전에, 잠시 전작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이상 현상으로 전 세계의 통신망이 끊기고, 비(타임 폴)에 젖는 모든 물질이 급속히 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좌초된 망자(좌초체) 'BT'가 이승을 떠돌다 산 자와 부딪히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세상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BT의 출현은 고래 같은 해양 생물이 스스로 해변에 밀려와 죽음을 맞는 '스트랜딩' 현상과 비슷합니다. 미합중국(USA)도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에 USA 마지막 대통령 브리짓 스트랜드는, 특수 능력을 가진 양아들 샘 포터 브리지스(노먼 리더스)에게 유언으로 특별한 배달을 부탁합니다. 미주 동부와 서부 끝을 통신망인 '카이랄 네트워크'로 연결해 미주도시연합(UCA)을 세워달라는 겁니다.
포터(배달꾼)가 된 샘은 고립되거나 단절을 택한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해주고, UCA 통신망 '카이랄 네트워크'에 연결합니다. 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면 통신은 물론, 필요한 물품 대부분을 프린트할 수 있습니다. 불안에 떨며 단절된 사람들은 마침내 UCA의 시민이 돼가는데요. 이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말한 '유기적 연대'의 회복 과정을 보여줍니다. 각자의 능력으로 서로를 돕고 의존하며, 교환과 계약으로 결속하는 그런 연대 말입니다.
샘은 BT의 위협을 탐지하는 데 쓰이는 특별한 태아 'BB-28'과 여정을 끝냅니다. BB에게 '루'라고 이름 붙인 샘은, 쓸모가 다해 폐기 처분해야 하는 BB를 병에서 꺼내 둘만의 보금자리로 향합니다. 루에게 세상을 선물하며 마지막 배달을 마친 겁니다.
호주에 카이랄 네트워크를 연결하러 떠나는 샘과 동료들. (사진=SIEK)
무조건적인 연결은 옳을까
2편은 가족이 된 샘과 루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장엄한 대자연 앞에 선 샘과 루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드넓은 산맥을 타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둘의 모습을 게이머 스스로 연출하게 됩니다.
이후 전작에서 샘을 도운 운송업체 사장 프레자일(레아 세두)이 루를 돌봐주는 대신, 샘은 멕시코를 카이랄 네트워크에 포섭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멕시코로 통신망을 확장한 샘은 집으로 돌아오지만, 누군가의 공격으로 루를 잃은 뒤였습니다.
프레자일은 샘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모아 'DHV 마젤란'호를 타고 호주를 카이랄 네트워크에 연결하러 떠납니다. 샘 역시 이들과 함께 하며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갑니다.
이번 여정에서 코지마 감독이 꺼낸 질문은 "우린 연결돼야 했을까(Should We Have Connected)?"입니다. 카이랄 네트워크 연결은 혹시 영토 확장이나 침략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이것이 단지 인터넷에 불과하다고 취급하는 것에 과연 문제는 없는지 말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장엄한 대자연만큼이나 숭고한 마무리에 있습니다. 감독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설정을 통해, 원치 않는 미래가 올지라도 '내일'은 소중하다는 걸 강조합니다. 우리가 연결돼 있다면 말입니다.
샘의 여정 대부분은 배송지를 설정하고 헤매고 다시 길을 찾는 겁니다. 그래서 외로울 수 있지만, 그동안 도와준 사람과 동료들이 게시하는 소셜 스트랜드 서비스(SSS)에 '좋아요'를 보내며 연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을 잃고 희망을 되찾는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도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통한 무조건적인 연결로 인간의 연대를 대체하려는 거지요. 이는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의 연결과 세계화의 어두운 이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작에 이어 인류를 멸종으로 이끌려는 힉스(트로이 베이커)의 계획도 샘의 목을 조여옵니다.
하지만 샘은 혼자가 아닙니다. 비를 내려 생기를 되살리는 레이니(쿠츠나 시오리), 타임 폴처럼 만지는 물체를 순식간에 노화시키는 투모로우(엘 패닝), 항해사 타르맨(조지 밀러), 목각인형에 깃든 영혼 돌맨(파티흐 아킨), 장의사 데드맨(기예르모 델 토로), UCA 초대 대통령 다이하드맨(토미 얼 젱킨스) 등이 서로의 상실을 위로하며 함께 '내일'을 만들어갑니다.
손에 닿는 모든 걸 노화시키는 투모로우. 그런데 어째서 '내일'을 상징하는걸까. (사진=SIEK)
여전히 헤매는 우리를 위해
이 게임은 사람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가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데요. 프레자일은 레이니와 투모로우 등의 능력을 장점으로 살려 세상에 기여할 수 있게 돕습니다. 특히 전작 내내 부정적으로 묘사됐던 비의 의미를, 노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로 뒤집어 놓습니다.
한국인 게이머에겐 반가운 얼굴도 나옵니다. 마동석 배우가 카메오로 출연해, 연대하는 세상에 동참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감독은 과거와 미래 모두 우리가 원치 않는 순간과 견딜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담고 있음을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연대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계획한 미래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엔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포터, 즉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