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창간6주년 기획: 상법이 바꾼판)②상장사 전반 지배구조 '지각변동'

상법 개정 후 지배구조 변화 시동…이사회·의결권 판도 교체 임박
'3% 룰·전자주총' 의무화…이사회 개편 고심 속 비용 부담도

입력 : 2025-07-23 오전 6:00:00
이 기사는 2025년 07월 22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총 제도화', '최대주주 3%룰 확대' 등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과 투자자와 기업 간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이지만 그 여파는 산업 전반과 자본시장 전반에 깊이 스며들 전망이다. <IB토마토>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과 주요 쟁점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산업·시장·정책의 파급효과와 기업·정부·투자자의 역할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이번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모든 상장사에 의무화됐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에만 적용됐지만, 이제는 모든 유가증권·코스닥 상장사로 확대돼 중견·중소기업 역시 소액주주 견제를 전제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사외이사 명칭은 독립이사로 변경되고 상장사는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전체 이사 수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독립이사는 사내이사·집행임원 등 경영진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향후 합병·분할·자회사 상장 등 이해상충 거래에서 견제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도 이사회 독립성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005930), LG(003550), 현대차(005380) 등은 최근 여성 이사, 해외 전문가, ESG 및 법률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를 이사회에 영입하고 있으며,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 기조도 확산되는 추세다.
 
한 재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제 사외이사는 형식적 존재가 아니라 실질적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라며 “법 개정 이후 이사회 구조와 의사결정 체계를 전면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단체를 중심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경제단체 소속 연구원은 <IB토마토>에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외부 세력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고, 이사의 방어 장치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라며 “기업 경영이 위축되지 않도록 명확한 지침과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충실의무 범위가 확대되면서 ‘총주주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게 적용될 경우, 경영진이 배임 우려에 발목 잡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주저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과 기업 성장 모두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제도 운용의 유연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행동주의 펀드나 기관투자자 중심의 지배구조 개입에도 힘을 실어주는 법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충실의무의 주주 대상 확대는 경영진에게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목표를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조항으로 향후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직접적인 요구의 법적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삼성물산(000830), 현대차(005380)그룹과 엘리엇, SK(003600)-소버린, KT&G(033780)- 칼 아이칸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개입 요구안이 당시에는 수용되지 않았지만 상법개정안으로 인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줄소송이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번 개정으로 그 활동 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견기업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된다.
 
이외에도 이사회 구성이 대주주 측 인사로 과도하게 채워진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이사 해임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기업지배구조센터 부센터장)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의사판단 준칙이나 책임의 범위에 대해 법령상 세부 기준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이사회와 경영진의 실무적 혼란이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상법 개정의 불확실성이나 소송 리스크 우려로 인한 기업 경영활동 위축은 어느 정도 나타날 수 있으나 명확한 절차와 투명성이 확보된 경우 소송에서 경영진의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견·중소기업 비용 부담…이사회 체계 전환 고심
 
대기업은 이번 상법개정안 통과에 따라 비교적 유연하게 이사회 개편에 나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반면, 중견·중소기업은 전문 인력 확보 및 외부 이사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 경영진 저항 등 현실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전자주총 의무화와 이사회 서류 디지털 보관 등 IT 시스템 구축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 일부 코스닥 상장사들은 감사위원 선임 방식을 변경하거나, 이사회 구성 자체를 간소화하는 방안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특히 중견·중소기업에는 준비 기간과 인프라 구축 여력이 부족한 만큼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라며 “상장사 중 전문적 인력과 비용이 여유로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2000개 가까운 중견·중소 기업이 향후 1~2년 내 독립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사 후보 수급난이나 전문성 저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문 변호사 역시 "과도기적 인력난 및 이사회 구성 부담, 법적 이행 초기에 의무 요건을 맞추기 위해 사내이사 중심 최소구성이나 기존 인맥에 의존하는 구조로 한시적 회귀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면서 "중소·중견기업은 상장협 사외이사 후보 데이터베이스 활용, 영위 업종 관련 학회 가입 및 네트워킹 등으로 사외이사 후보풀을 다양화하고, 내부 이사 교육 확대 등으로 미리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상장사로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기업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상장회사는 대주주가 아닌 주주 전체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라며 “독립이사를 경영 견제 세력으로만 보지 말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밸류업 아닌 거버넌스 개선 …경영 패러다임 전환 임박
 
정부가 주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가 부양을 목표로 하는 단기 처방이라면 이번 상법 개정은 코리아디스카운드(저평가) 해소는 물론 기업의 경영 방식과 구조에 대한 중장기 해결책으로 평가된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일부 자행됐던 오너의 개인회사로 일감몰아주기, 오너일가 합병 등 충실의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간 이해가 충돌하는 의사 결정은 더 이상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회사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상장 기업으로서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상당히 당연한 일. 회사 경영을 제약하려는 족쇄라는 것은 일부 잘못된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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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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