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노동환경 개선을 강조하는 가운데 문재인정부의 '인천국제공항 사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지만, 이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현장 혼란만 가중된 겁니다. 노동계에선 이 대통령 친노동 행보와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3차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꺼냈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전날 28일 발생한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 회사에서 올해만 다섯 번째 사고”라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산재가 반복·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사업장에 대해 “(안전에) 투자를 안 하면 주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 “회생이 어려울 만큼 강한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철저히 단속하겠다”며 “직을 걸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상당 기간 산재가 줄어들지 않으면 진짜 직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부터 "국민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책임지는 국가의 제1책무를 다하겠다"며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부터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책 마련까지, 안전 사회 건설의 책무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엔 인천 맨홀 공사 사망사고, 지난 14일 포스코 광양제철 사망사고 등을 언급하며 현장 방문을 예고했습니다.
특히 지난 25일엔 중대산업재해가 반복된 SPC삼립 시화공장을 찾아 허영인 SPC 회장 등 경영진을 질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산재 사고의 배경으로 '장시간 야간 노동'을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SPC는 결국 이 대통령이 방문하고 이틀 만인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동계에선 이 대통령 행보를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슈를 제기했다는 겁니다. 이정훈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장을 찾는 건 의미가 있다”며 “수십년째 사람이 일하다 죽어 나가는데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산재 사망사고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문재인정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문 전 대통령도 취임 뒤 첫 민생 행보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에선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현장 효능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에서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내려주지 않아 기관별로 자의적으로 판단한 탓에 정규직화 대상에서 누락된 사람들이 많았다”며 “처우나 승진 등 근로조건에 문제에서도 공무직위원회가 진행되다 말아서 현장에선 정규직 전환 대책의 효능감을 못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사이다 발언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통령이 기업 각성을 촉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업이 노동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근본 원인인 하도급·외주화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SPC에서) 노동시간 축소를 지적했는데, 임금 축소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대책 없이 대통령 발언만 쫓다 보면 현장 노동자에게 고통이 전가된다”며 “인천국제공항 사태가 그랬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산재의 구조적 원인을 짚은 만큼 노동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습니다. 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문재인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은 한 사업장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했던 반면, 산재를 근절해야 한다는 건 적어도 노동자들 사이 이견이 없다”며 “현재 미국 관세 협상, 인사 논란 등 현안이 많은데 이 대통령이 산재를 강조하는 건 사회적 의제 차원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대통령이 SPC에서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지적한 만큼 산재를 시작으로 노동계의 해묵은 과제들이 잇따라 제기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