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승찬처럼 건국일 부정?…이재명 기사 한 면 할애한 <국방일보>"

<뉴스토마토>, 채일 국방홍보원장 공익신고서 단독 입수
50만 장병에 뉴라이트 역사관 주입 시도…도 넘은 '극우화'
"'추미애·김병주' 넘어서 안심했는데 '허영'이란 놈이 또 시비"
"종북좌파들과 전쟁 벌일 각오"…야당에 대한 강한 적개심

입력 : 2025-07-30 오후 5:13:05
채일 국방홍보원장과 <국방일보> 실무자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의 일부를 재구성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대한민국 건국일 1948년 8월15일을 부승찬(민주당 의원)처럼 부정하는 건 아니겠죠? 지금 대한민국은 6·25전쟁 직전 상황과 유사합니다. 갑자기 대한민국 건국 날짜가 1919년이라는 선전·선동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11만5000(국방일보 발행 부수) 장병들에게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일이 어떤 날인지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으로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국방일보>와 <KFN TV> 등에 반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국방부의 감사를 받고 있는 채일 국방홍보원장이 지난해 8월15일 <국방일보> 제작진에 보낸 메시지입니다. 자신의 뉴라이트 역사관을 '50만 국군장병'에게 주입하기 위해 <국방일보>를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30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채 원장 공익신고서에는 이 내용을 비롯해 갈무리한 메신저 대화방 화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대부분이 정치적 편향을 담은 업무 지시나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내용들입니다. 
 
채일 국방홍보원장. (사진=국방홍보원 홈페이지)
 
민주당에 노골적 반감 드러내며 업무 지시
 
지난 2023년 11월11일 채 원장이 부하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자신이 채용 면접에서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국방부 내부의 일부 인사 그리고 똥별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다. 물론 홍보원에도 많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같은 해 12월26일에는 "팀원들과 잘 소통하면서 종북좌파 정권의 국방홍보원이 아니(아닌)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르는 국방홍보원의 국방일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난해 2월6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번 면밀하게 조명해보는 건 <국방일보> 정체성으로 적절합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해병대2사단 격려 방문한 기사가 1월25일 자에 실린 것과 관련해) 6·25전쟁이 국지전 어쩌구저쩌구 떠든 이재명을 한 면 할애한 국방일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야당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민주당은 '북한 대변인'…총선 지면 나라 꼴 거덜"
 
그해 3월18일엔 "총선에서 이번에 지면 나라 꼴 거덜 날 겁니다. OO 정부기관에서도 OOO(홍보원 직원) 같은 놈들이 OOO 방송사에 제보하고 난리 치고 있답니다. 종북 사무실 깡패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공무원인 부하 직원에게 총선에서 특정 정당이 지면 안 된다는 것을 강요한 정황으로 풀이됩니다.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보입니다. 
 
이어 4월25일에는 "종북좌파가 너무 많다"며 "국방홍보원에 있으면 안 되는 비애국적 공무원이 너무 많다"고 했습니다. 이 메시지 이후 채 원장은 본인 지시나 제안에 이견을 보이는 직원은 물론 외부 인사까지 '종북좌파'로 몰아갔다는 게 공익신고자의 주장입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품은 것으로 보이는 채 원장은 민주당에 대해 '북한 대변인', '종북좌파'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썼습니다. 
 
지난해 10월20일 공익신고자가 북한 전투병 러시아 파병 공식 발표 관련 여야 반응을 모은 기사를 보고하자 "고생하셨습니다. 민주당 반응은 의미 없는 소리인데 억지로 반영했군요.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11월4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와 관련해 "오늘 방송부장과 팀장은 수석전문실 행정실장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했습니다. 종북좌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팀장님 우리 정신 차립시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 그달 12일에는 "추미애 홍보원 예산 전액 삭감. 김병주, 허영 12억 삭감 추진. 종북좌파들은 국방일보, 국방홍보원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들과(얘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 만약 감액이 추진되면 우리는 각오하고 종북좌파들과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달 19일에도 "허영이 다시 우리 예산 12억 깎겠다고 달려들고 있어요. 종북좌파들 집요합니다. 추미애, 김병주를 넘어서서 안심했는데 허영이란 놈이 또 시비를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국회의 정당한 예산심의권을 부정하며 야당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채일 국방홍보원장과 <국방일보> 실무자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의 일부를 재구성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노벨상' 한강은 안 되고…이승만 다룬 '건국전쟁'은 된다
 
채 원장은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기사 게재 여부를 선택적으로 지시하기도 합니다. 지난 2023년 11월10일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인터뷰 대상자로 고려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자 "한강은 좋은 젊은 작가입니다. 하지만 5·18을 미화한 작품이 우리 장병들의 정신교육에 맞는지 같이 고민해보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다음 날인 11일엔 "한강 작가가 상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며 "역사적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현대사의 비극이고, 남로당에 의해 많은 국군도 희생되었고 많은 양민도 사망했다. 국방일보가 과연 이 사건을 다룬 소설을 자신 있게 분석할 수 있겠냐. 여러 사안을 고려해서 판단하라"는 지지를 했고 이 지시에 따라 <국방일보>는 인터뷰 추진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14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국방일보> 보도에 대해 '사전 보고나 정보 공유 없이 기사 냈다'며 간부회의에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고, 12월10일에는 한강 작가 노벨상 시상식 참석과 관련해 "이전에 선정됐을 때 다뤘으나 다시 다루지는 말라"는 구두 지시가 있었다는 게 공익신고자의 증언입니다. 당시 <국방일보> 편집회의 메신저 대화방에는 "오늘 밤 한강 노벨상 수상은 기사 작성 말라고 원장 명확히 지시"라는 메시지가 남겨졌습니다. 
 
채 원장은 올해 1월10일 <국방일보>에 실린 '새해에도 K문학 열풍 계속된다'는 제목의 기사 내용 중 한강 작가 언급 부분을 두고는 "나를 시험하는 것이냐"며 국방일보부장(편집인)을 질책하는 한편 해당 기사 작성한 기자를 취재팀에서 디지털콘텐츠팀으로 이동시키는 인사 조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채 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 영화 <건국전쟁>과 관련한 지시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지난해 3월6일 영화 <파묘>를 소개한 기고문의 기고자를 해촉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겁니다. 이런 지시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관객 수 1위를 이어가는 <파묘>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흥행이 안 된다며 비판한 직후였습니다. 결국 기고자 해촉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뒷말이 무성했다는 게 공익신고자의 말입니다. 
 
또 채 원장이 <건국전쟁>의 기획보도를 지시해 감독 인터뷰 등 기획취재가 여러 차례 이뤄졌고, <KFN TV>는 <건국전쟁> 판권을 구매해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채 원장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저서 『양심』을 소개한 기사를 삭제할 것도 지시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추천이면 안 봐도 뻔하다'는 이유였다는 전언입니다. 
 
채 원장 재임 2년여간 직원들 '자기 검열' 심해졌다
 
이 같은 채 원장의 특정 정치 성향을 담은 업무 지시가 2년 넘게 이어진 것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취임 소식을 전한 지난 28일자 <국방일보> 1면 머리기사에서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표현이 빠진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채 원장이 자신의 지시에 반론을 제기하면 '종북좌파'로 몰고 부당하게 인사 조치를 하면서 <국방일보> 기자들 스스로 심각하게 '자기 검열'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 이후 국방홍보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인 국방부 감사 요원들이 해당 기사의 작성 경위를 파악했다"며 "조사에서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자신이 판단해 쓴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채 원장 취임 이후 기자들의 자기 검열이 심해진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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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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