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관세 승리'를 자축하고 있지만, 자국 경제 전반에 불신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미 행정부가 직접 불을 지핀 '관세 전쟁'의 후폭풍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퍼지면서 그간 감춰져 있던 '착시 지표'들이 하나둘 흔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비용 인상을 감내하지 못하고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을 전가하기 시작했고, 고용시장마저 급격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9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관세율 탓에 정치적 성과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 국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예일대 분석은 당파적"…백악관의 반박
3일(현지시간) 백악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관세정책이 소비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예일대 예산연구실 분석에 대해 "당파적 분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소비자들은 예일대 예산연구실과 같은 분석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일축했습니다.
앞서 예일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평균 유효관세율'이 올해 초 2.5%에서 7개월 만에 18.3%까지 급등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1934년 이후 91년 만의 최고치로 오는 7일부터 발효되는 국가별 상호관세까지 반영한 수치입니다. 이날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번 관세는 협상으로 인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신발·의류 물가 40% 급등…GDP 2년 연속 하락 전망
예일대는 단기적으로 미국 전체 물가가 1.8% 오를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이에 따라 가구당 연간 약 2400달러(한화 약 330만원)의 실질 소득 감소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특히 신발과 의류 가격이 단기적으로 각각 40%, 38% 급등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가죽, 금속, 농산물 등도 장기적으로 15% 이상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국내총생산(GDP)도 타격을 피하지 못할 전망입니다. 연구진은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0.5%포인트 하락하고, 이후에도 매년 0.4%포인트씩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 침체) 우려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잇따라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으며 고용시장도 급속히 위축되는 모습입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7월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는 7만3000개에 그쳤습니다. 시장 예상치인 10만개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더 큰 충격은 이전 수치의 하향 조정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5~6월 신규 고용이 총 25만8000개가 줄어든 것으로 수정 발표된 겁니다. 이에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책임자를 즉시 해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고용시장만큼은 관세정책과 무관하게 견조하다"는 주장이 통하던 상황이 흔들린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성과를 자축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에 대한 불신의 징후가 짙어지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기업들 줄줄이 가격 인상…WP "가난한 미국인 겨눈 세금"
미국 내 소비자물가는 이미 상승세에 올라탔습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7%를 기록해 4월, 5월에 이어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 프록터앤갬블(P&G)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전체 제품 중 25%의 가격을 인상했다고 밝혔으며 월마트, 포드, 베스트바이, 아디다스, 나이키 등도 줄줄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초래한 충격이 이제 막 본격화됐다고 경고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실효 관세율이 트럼프 취임 당시보다 8배 이상 치솟았고, 소매업체가 그 부담을 소비자에 전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며 "올해 내구재 가격은 1.7% 상승해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른 상승 속도이며 가계당 연간 손실은 200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역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며 "관세는 결국 저소득층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역진적 세금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가난한 미국인들은 코스트코나 월마트에서 음식과 옷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승리인가"라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컬럼비아대 연구원 애런 바트닉은 "트럼프의 관세는 이제 모든 경제적 문제에 못을 박는 망치가 되었다"며 "그는 이 새로운 질서를 통해 노벨 평화상을 꿈꿀 수는 있지만 국민들이 맞이하게 될 현실은 더 높은 물가와 불안정한 경제"라고 꼬집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