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첫해는 '속도', '권력', '불확실성'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됩니다. 관세로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행정명령으로 입법부를 압도했으며 예측 불가능한 정책 운용은 기업과 금융시장을 동시에 흔들었습니다. 백악관은 "전례 없는 성과"를 자평하고 있지만 여론과 실물경제, 동맹국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첫해는 ‘속도’, ‘권력’, ‘불확실성’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된다.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재집권 첫해, 속도는 전례 없었고 방향은 '급진적'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취임 11개월 동안 총 225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첫 임기 4년 전체 동안 서명한 220건을 이미 넘어선 수치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이후 취임 첫해 기준 최다입니다. 정책과 논란을 동시에 쏟아내 반대 세력과 언론, 사법부의 대응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속도와 집중력을 끌어올렸지만 문제는 그 방향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 사실상 '관세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두 자릿수 관세는 미국 경제가 수십 년간 유지해온 개방적 무역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습니다. 실효 관세율은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담이 이미 역사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합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11월 기준 미국의 실효 관세율은 약 17%로, 대공황 이후인 1935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특정 품목별 명목 관세가 아니라, 실제 미국으로 유입되는 수입 구조를 반영해 계산한 평균 관세율입니다.
<AP통신>은 "실효 관세율은 정치적 수사와 달리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실제로 체감하는 관세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관세가 더 이상 상징적 조치가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에 구조적인 비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습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채드 바운 선임연구원도 "현재의 실효 관세 수준은 단기적인 협상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조달·투자·가격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수"라며 "결국 비용은 수입업체를 거쳐 미국 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역적자는 일시적으로 축소됐습니다. 관세 시행을 앞두고 수입이 급증하면서 지난 3월 무역적자가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한 뒤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1~9월 누적 기준으로는 여전히 전년 대비 17%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세가 무역 흐름의 '시점'을 바꿨을 뿐,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관세는 미국의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효과를 냈습니다. 올해 1~3분기 중국산 수입은 약 25% 감소했고, 중국은 미국의 최대 수입국 지위를 잃었습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47.5%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는 제조업의 본국 회귀(리쇼어링)보다는 공급망의 우회로 이어졌습니다. 멕시코와 베트남, 대만 등으로 수입이 이동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한 셈으로,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가속화됐다는 평가입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도심의 한 벽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찢어진 포스터가 걸려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기업 파산 급증…성장률은 강한데 '관세의 그림자'
관세 부담은 기업을 정조준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미국에서 최소 717개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제조업체와 부품 공급사, 운송·물류, 재생에너지 기업에서 파산이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소넨펠드 교수는 "가격 결정력이 없는 기업은 관세와 고금리 비용을 견디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가격 인상으로 비용을 전가할 수 없는 기업들이 먼저 무너진 셈입니다.
미국 경제는 수치상으로는 강해 보입니다.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연율 4.3%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 체감은 다릅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년 대비 약 28% 급락했고, 관세로 인해 미국 가계의 연간 추가 부담이 1800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왔습니다. 금융시장은 관세 자체보다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S&P)500 지수는 관세 정책이 급변하던 4월에 일간·주간 기준 최대 변동폭을 기록했고, 3월 급락과 6월 급등을 오갔습니다. 시장에서는 "관세보다 무서운 것은 번복"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집중은 논란을 더욱 키웠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2.0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은 눈에 띄게 약화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여론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갤럽이 11월 실시한 여론조사(지난달 3~25일 미국 성인 1321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0%포인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3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1년 만에 미국 대통령직의 작동 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합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와 행정권을 결합해 정책 집행 속도를 극대화했고, 그 과정에서 의회와 사법부의 전통적 견제 장치는 약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분기점으로 2026년 중간선거를 꼽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는 중간선거 전까지 가능한 한 많은 정책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며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 2.0의 변화가 제도화될 수도, 강한 반작용 속에 되돌려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결국 향후 1년은 트럼프의 속도를 미국 경제와 제도가 감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