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KT(030200)의 인공지능(AI) 사업 전략을 둘러싸고 정보통신기술(ICT) 주권 종속 우려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현재 KT AI 전략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AI 전략과 관련해 KT는 최근 자체 모델 개선, 서비스 접목 확대를 주창하고 있지만, 실제로 회사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입니다.
KT와 MS 협업은 지난해 급물살을 탔습니다. 김영섭 KT 대표가 지난해 6월 초 미국 MS 본사를 찾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후 이사회에서 논의가 본격화됐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11일 KT 사외이사 8인이 참석한 임시 회의에서 M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추진안이 논의됐습니다. 이후 9월24일 김영섭 KT 대표와 서창석 KT 부사장 등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8인이 참석한 이사회 정기 회의에서 KT와 MS 전략적 파트너십 추진안이 원안대로 가결됐습니다. KT는 9월29일 5개년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을 알리고, 10월10일 대한민국을 글로벌 AI·클라우드 허브로 만들겠다며 MS와의 전략적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김영섭 KT 대표(왼쪽)와 사티아 나델라 MS CEO 겸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9월29일 체결식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KT)
취임 후 김영섭 대표는 KT의 AICT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는데요.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최고의 역량을 가진 기업과 협력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차별화된 AI·클라우드 기반을 다져 기업간거래(B2B) 시장의 고객들이 AI 컴퍼니로 혁신하도록 이끌고, 개인 고객들에게는 새롭고 가치 있는 AICT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성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목표 아래 KT가 그간 진행해온 전략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습니다. AI 시장 내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흐름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 아니냐는 시각인데요. 국가대표 AI 공모에 나섰지만 5개 선정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AI 반도체부터 모델 개발, 서비스까지 AI 관련 산업 생태계 전반을 국가 차원에서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해진 현재, MS와 손잡는 데 만족한 것이 경영 전략의 한계로 평가되는 분위기입니다.
KT는 본래 경쟁사보다 앞장서 독자 모델 개발에 나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에서 대표 교체를 겪는 사이 기존 계획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KT는 2022년 7월 리벨리온 투자를 알리며 AI 풀스택 역량 확보를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초거대 AI 모델 믿음 상용화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섭 대표 취임 이후 믿음은 KT의 사업 논의 과정 중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후 KT는 이재명정부가 국가대표 AI 선발에 나선 지난 7월에서야 믿음 2.0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믿음 상용화 당시 회사 경영 전략을 담당했던 전직 임원은 "몇달 만으로도 AI 시장이 바뀌고 있는데, 1년 넘게 방치됐던 믿음이 제구실을 할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의 모습. (사진=뉴시스)
일각에선 KT와 MS 간 계약이 불러올 후폭풍이 더 큰 문제라고도 지적합니다. 향후 ICT 주권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겁니다. KT와 MS 결합으로 국가 핵심 공공망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고, 또 외국계 기업이 국가 주요망과 데이터를 통제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국가망의 외국산 종속 이슈도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MS의 애저(Azure) 클라우드로 기반을 옮긴 이후에는 시스템 회귀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MS와 계약에 따라 KT가 초기 구축 비용은 물론 매년 수천억원의 기술 사용료와 판매 대금을 MS에 지급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지목됩니다. 때문에 M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추진안에 대해 동의한 KT 이사회에도 연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KT 전 고위 임원은 "KT가 MS와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사회 내에서 원안대로 가결됐기 때문"이라며 "당시 의결 당사자인 사내·외 이사들에 사업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KT는 3대 AI 사업 방향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입니다. 지난 11일 진행된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장민 KT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는 글로벌 협력, 자체 AI 개발을 병행하는 멀티 모델 전략, 네트워크·미디어 서비스 혁신 등을 AI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