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대출·세금 '계층 갈라치기'

입력 : 2025-08-21 오후 3:48:21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6억원 이상 주담담보대출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올해 1분기 대출 정보 등을 봤을 때 10%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6·27 부동산대책 발표 브리핑, 금융위원회)
 
"윤석열정권이 대주주 요건을 50억원을 높였지만, 큰손 9000명의 세금을 깎아줬을 뿐" (지난 7월28일, 당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정부와 여당이 금융정책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논리가 '대상은 제한적이니 충격도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가운데 6억원 초과 건은 10% 수준에 불과하고,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춰도 영향을 받는 투자자는 9000명 남짓이라는 식입니다. 
 
결국 고소득층과 큰손 투자자만 해당되는 사안이니 일반 국민(투자자)에 미치는 영향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정책의 대상은 소수일지 몰라도 그로 인한 파장은 시장 전체를 흔드는 구조입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6·27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주담대 한도를 수도권과 규제 지역에서 6억원으로 제한하고, 다주택자의 주담대를 전면 차단한 것입니다. 이 규제는 겉으로 보기엔 고가 주택을 겨냥한 조치처럼 보입니다. 6억원을 제한하는 초고강도 규제를 기습적으로 시행했지만, 실제로 6억원 한도 이상으로 주담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소득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요가 중저가 아파트로 몰릴 경우 하급지의 부동산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풍선효과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6억원 이하에서 대출이 가능한 단지를 중심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수도권 외곽, 서울의 준중형 평형대 아파트까지 가격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부동산 공급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실수요자 간의 '좁은 문 경쟁'을 유발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동안 내 집 마련을 준비해온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계획했던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하급지로 밀려났다"는 박탈감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정이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으로 다시 낮추기로 하면서 연말마다 반복되던 매도세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부 큰손에게만 해당되는 조치"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연말 대주주 회피 매도세는 늘 일반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시장을 왜곡시켜왔습니다. 
 
고액 투자자가 보유 물량을 털고 나가면 거래량이 급감하고, 시장은 불안정해집니다. 이 같은 매매 왜곡은 결국 개미투자자에게 체감되는 손실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양도세 개편이 증시를 흔드는 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책 설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부만 해당된다'는 표현은 단순한 수치 설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용하는데요. 고가 주택 소유자나 큰손 투자자를 '적대적 타깃'으로 설정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수사 전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자산가나 고가 주택 소유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적개심을 자극함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들만 해당된다'는 말 뒤에는 '그들이니까 괜찮다'는 위험한 논리가 숨어 있는데요. 이는 결국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정책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할 수 있는 독이 됩니다. 
 
문제는 이 같은 프레임이 실질적 피해자를 가리고, 정책의 구조적 부작용을 축소하는 데 악용된다는 것입니다. 정책의 파급 효과를 무시하면 실제 피해를 겪는 무주택 실수요자나 개미투자자의 절박한 현실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습니다. 
 
금융정책은 누구를 규제하느냐보다, 누가 영향을 받느냐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할 것입니다. 단순 통계로 충격을 축소하거나 소수 대상을 악역 삼아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결국 시장의 작동 원리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들만 해당된다'는 말 뒤에 숨겨진 박탈감과 왜곡된 구조를 외면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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