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방비 증액과 대미 추가 투자 등 거센 압박에 나서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압박에 조현 외교부 장관에 이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급하게 미국 방문에 나섰는데요. 한국 정부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지만, 향후 실질적 합의까지 암초가 적지 않습니다. 경제부터 안보 의제까지 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돌발 변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각 쟁점에서 터져 나올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돌발 발언 가능성'도 변수로 꼽힙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이겨내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①안보 청구서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동맹 현대화'에 대한 미국의 '안보 청구서' 내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최근 조현 장관이 일본 방문을 건너뛰고 갑작스럽게 방미에 나선 것을 두고 '동맹 현대화' 논의 과정에서 양국의 입장차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실제 미 국무부는 조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의 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억지력을 강화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는데요.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 즉 전략적 유연성을 부각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두고 일각에선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주일미군뿐만 아니라 한반도 방위를 목적으로 배치된 주한미군 역시 투입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는데요.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한국에 동맹국으로서의 더 큰 기여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에 주한미군과 관련해 정상회담의 초점을 한국의 군사비 확대 요구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방비 증액과 방위비 분담금 확대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측이 2배 가까운 증액을 요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②K-원전·조선
한·미 양국이 조선업에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이어 원전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을지도 주목됩니다. 외교·통상 수장과 원전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출동하면서, 양국 간 원전 협력도 주요 의제로 부상했는데요. 앞서 미국 측은 협상 과정에서 자국 내 원전 확대 계획을 소개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원전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 사장도 정상회담에 맞춰 이미 미국을 방문해 협력 범위가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관건은 원자력협정 개정 여부입니다. 현재 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동의 없이는 20% 미만의 우라늄조차 농축할 수 없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금지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협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다만 농축 기술이나 플루토늄은 핵무기 개발과 직결될 수 있어 미국이 이를 허용할지는 불투명합니다.
마스가 프로젝트와 관련해선 1500억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는데요. 이 자금은 미국 내 조선소 인수와 확장 등에 쓰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군력·조선업 부흥에 큰 관심을 쏟고 있어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행을 위한 방안과 시간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될지 주목됩니다. 다만 마스가 프로젝트가 한국 조선소들에는 위험한 확장 경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③대미 투자액
한국은 관세협상에 있어 일본·유럽연합(EU) 등과 동일한 선상인 15% 상호관세 협상을 위해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72조원)와 1000억달러(약 138조원) 규모의 에너지 수입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협상은 큰 틀에서의 협상안일 뿐 구체적 투자 계획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될 전망입니다. 때문에 대미 투자 펀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압박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지난 19일 이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과 함께 대미투자·협력안을 공개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 방미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는 기업들의 추가 투자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방미 경제사절단의 이른바 '투자 보따리'가 현지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요. 반도체·배터리·자동차·바이오 등 전략 산업 분야 협력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입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테슬라, 애플과 잇따라 대형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증 계획을 밝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④비관세 압박
이번 회담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요구'에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현재 한미 동맹은 경제·통상과 안보 양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실무 차원에서 사전 조율 작업을 마친다 해도 언제든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요구가 나올 수 있다는 건데요. 실질적 협력과 협상이 가능한 대미 투자를 제외하면 비관세 영역에서의 돌발 요구가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이후에도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우리 정부는 이미 농축산물 시장의 99.7%가 개방돼 있다는 입장이지만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 요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쌀과 소고기 개방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이 자동차와 쌀 같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역사적 개방을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도 미국은 '디지털 무역 장벽'이라는 입장입니다. 지난 한·미 관세 협상에 온플법 관련 내용과 구글·애플이 신청한 정밀지도 반출 허용 여부가 포함되지 않은 만큼 구두 합의의 협상을 문서화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