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에 상법개정안까지…재계 승계구도 ‘치명타’

‘주주 이익 보호’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
기업 지배구조·승계구도에도 영향 줄 듯
“‘정치적 부담’으로 승계 작업 조심할 듯”

입력 : 2025-08-25 오후 5:19:00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이어 소위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이 25일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지난달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1차 상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소액주주 이익 보호에 핵심을 둔 정책입니다. 연이은 상법 개정안의 통과로 CJ, 롯데 등의 지배구조와 승계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승계 목적으로 의심되는 유상증자나 분할이중 상장 같은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주주들의 반대 소송 등 법적 근거가 마련된 까닭입니다. 아울러 자사주 활용과 대주주 의결권에 제약이 걸리면서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 구상도 복잡해진 양상입니다. 
 
25일 서울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처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이 중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소액주주가 원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을 보다 쉽게 터주자는 취지입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제도입니다. 이번 개정안에선 이러한 분리 선출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해 소액주주가 원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등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투명한 지배구조' 부담 커진 롯데
 
여당은 이번 1·2차 상법 개정안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한국에서는 그간 기업이 회삿돈으로 사들인 자사주를 취득한 뒤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승계 등 사익에 활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와 이러한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롯데지주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비롯해 이번 개정안의 대표 타깃으로 꼽힙니다. 지난해 말 32.5%였던 지분에서 최근 5%가량을 롯데물산에 매각해 다소 준 롯데지주는, 현재 전체 지분의 27.5%를 자사주로 보유 중입니다. 롯데 측은 “2017년 지주사 전환 당시 발생한 구조적 자사주”라 해명합니다. 그러나 개정된 법 아래서는 자사주 자체가 지배력 확보 수단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투명한 지배구조’라는 개정 취지에 비춰, 비상장 외국계 법인을 통한 우회 지배 또한 법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일본 롯데홀딩스를 통해 호텔롯데와 롯데지주로 이어지는 간접 지배구조를 유지해온 신동빈 회장은, 이와 동시에 롯데지주 지분 13%를 직접 보유하며 영향력을 보완해왔습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한 것이 개정안의 뼈대인 만큼, 책임 추궁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지난달 28일, 롯데웰푸드 소액주주들은 신 회장 등 전·현직 이사 17명을 상대로 273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2년 빙과류 담합 과징금(118억원)과 신 회장의 과도한 중복 보수 수령(롯데웰푸드 154억원 등)이 쟁점입니다.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와 맞물려 주주권 행사 움직임도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입니다. 
 
CJ, 승계 구도 영향 불가피할 듯
 
소액주주 이익 보호에 핵심을 둔 상법 개정 흐름은 승계 구도를 준비 중인 대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재계에서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 지분을 늘리거나 지분율이 다른 두 회사를 합병시키는 과정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왔습니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는 상법 개정으로 제동 장치가 마련되면서 향후 승계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CJ그룹의 승계 시나리오에도 상법 개정안이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재계 안팎에서는 CJ올리브영의 상장 또는 지주회사인 CJ와의 합병을 유력한 승계 시나리오로 거론해왔습니다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과 딸인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은 각각 11.04%, 4.21%의 CJ올리브영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으로 자사주 활용이 제한되는 데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감안한 기존 상장 전략의 실익도 낮아지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CJ올리브영이 신한계 특수목적법인(SPC) 한국뷰티파이오니어가 보유한 지분 11.3%를 매입해 자사주 비중을 22.57%로 늘린 것을 두고, 승계 작업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CJ그룹 총수 일가 CJ·CJ올리브영 지분도. (그래픽=뉴스토마토)
 
상법 개정 계기된 한화 유증 논란
 
앞서 논란이 일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규모 유상증자의 경우는, 이재명정부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한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역대 최대 규모인 36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특히 유상증자 발표 한 달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다른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임팩트파트너스와 한화에너지 등에 1조3000억원을 주고 한화오션 지분 7.3%를 사들이는 계약을 맺으면서 일반주주들의 돈으로 승계 자금을 조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불거졌습니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규모를 23000억원으로 줄이고김 회장이 자신이 보유 중이던 한화 지분의 절반인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하면서 승계 논란이 일단락됐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향후 다른 기업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유증을 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화그룹 지배구조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법 개정 통과로 (승계를 위한) 이중 상장 등 주주 충실 의무 위반에 따른 소송의 가능성은 높아졌으나, 아직 판례가 나온 것이 없기에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라며 하지만 현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얘기하는 상황에서 이를 정면에서 반하는 행동을 하기는 어렵기에 기업들이 정치적 부담을 느껴 (승계 작업을) 조심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일선 한국CXO 연구소장은 기업들이 승계 준비나 지배구조 계획들이 있었지만 상법 개정으로 여러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등 속도 조절을 할 가능성이 있다다만, 장기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가려면 지금 하는 상법 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도심의 마천루 모습. (사진=뉴시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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