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중견기업들이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경영 불확실성과 소송 비용에 대한 우려가 큰데요. 대기업이 상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있는 것과 달리, 다수 중견기업들은 아직 별다른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중견기업 다수, 내부 논의·대비책 부족
2차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한해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고, 분리 선출 감사위원 위원 수는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대상이 되는 중견기업 대다수는 2차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갑작스런 법 통과에 난색을 내비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요.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아직 조용한 분위기이고 특이 사항은 없다"며 "별다른 대응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다.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 센'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중견기업 관계자는 "당사는 주주 권익 보호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향후 상법 개정안 관련 제도 변화에 대해서도 관련 법령과 규정을 성실히 검토하고 주주와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원론적으로 답했습니다.
그나마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업의 경우 일단 소송 증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안을 구상하는 단계인데요. 이 중견기업 관계자는 "현재 상장사들의 대응 현황을 살펴보면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일반 주주에 대한 영향력을 분석하고 법률 전문가 자문을 강화할 예정이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의 보장 범위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기업 임원이 직무 수행 중 발생한 부당행위로 인해 주주나 제3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경우 해당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인데요. 임원 개인의 법적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정안에 따라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이사 후보가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소수주주 측 감사위원이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거나 특정 주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소수주주 측 이사가 감사위원으로서 자료 제출 요구권, 업무 조사권 등을 활용하기에도 유리합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상법 개정으로 오너 일가가 기피할 만한 감사위원을 2명이나 선출할 수 있게 됐다"며 "감사위원의 역할은 크다.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국회의원처럼 기업에 많은 자료들을 요청할 수 있다. 경쟁사가 소수주주로 들어오면 중요한 경쟁사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앞서
코웨이(021240)는 올해 초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로부터 집중투표제 도입 요구를 받은 바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무산되기는 했으나 이번에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됐기에 또다시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행동주의펀드를 포함한 외부 투자자들은 빠른 자본 회수와 수익 실현이 목표인데요. 이런 외부 투자자들의 힘이 커지면 기업들은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법 개정안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기업에 추천하고 검증해주는 컨설팅 업체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소수주주들이 반발하지 않을 만한 적임자를 추천해 기업의 위험을 취대한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요. 한 업체는 사외이사의 교육도 담당하며 사외이사가 무탈하게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
법무법인 율촌은 상법 개정안으로 인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기업이 소수주주와 지속적이고 투명하게 소통할 창구를 마련하고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과 가치 창출 전략을 설명하는 등 우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감사위원들이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정확히 인지하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감사위원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정한 감사위원회 규정 내지 운영 가이드라인 등을 사전에 마련해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조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성장 사다리 관점에서 기업공개(IPO)의 순기능을 생각해보면 상법 개정안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이번 상법 개정안 대상이 되는 기존 기업들이 짧은 시간 내에 경영권 방어라는 관점에서 전략적인 계획들을 잘 수립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