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자리에 '김정은'…북·중·러 신밀월 과시

시진핑 양옆에 '좌 김정은'·'우 푸틴'…러시아와 어깨 나란히 한 북한

입력 : 2025-09-03 오후 5:50:17
[뉴스토마토 박주용·이진하 기자] 3일(현지시간)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선 것은 북·중·러 3국의 밀착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특히 1959년 열병식 당시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양 옆엔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과 호찌민 베트남 국가주석이 있었는데요. 6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호찌민 주석의 자리를 김 위원장이 꿰찬 모양새입니다. 서열·의전을 중시하는 중국이 북한과 김 위원장의 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으로 꼽힙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66년 전 마오쩌둥 양옆에 러·베트남…위상 높아진 '김정은'
 
시 주석은 이날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을 극진히 영접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26개국 정상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행사장에 입장해 시 주석 내외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이 가장 마지막으로 입장했습니다. 앞서 중국은 전승절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첫 번째로, 김 위원장을 두 번째로 불렀는데 이날 입장 순서도 이런 의전 순서에 따른 겁니다. 
 
북·중·러 정상은 행사 전 기념 촬영부터 맨 앞줄 중심에 나란히 서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양옆에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자리했습니다. 시 주석 부부 왼쪽엔 김 위원장이, 오른쪽엔 푸틴 대통령이 섰습니다. 
 
이후 이동하는 동안 이 대열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을 중심으로 김 위원장이 왼편을, 푸틴 대통령이 오른편을 유지했습니다. 톈안먼 망루에 오를 때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초청된 26명의 정상들 가운데 가장 앞줄에 서서 시 주석 바로 뒤를 따랐습니다. 망루에서도 시 주석 뒤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함께 입장하며 중국 항전 노병들과 악수를 나눴고 망루 한가운데에 세 정상이 함께 섰습니다. 시 주석의 왼쪽에는 김 위원장,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나란히 선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열병식의 자리 배치로 김 위원장이 북한의 초대 주석인 김일성 주석의 국제적 위상과 동일선상에 있게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북·중·러 정상이 천안문 망루에 함께 서는 것은 1959년 중국 건국 10주년 열병식 이후 처음인데요. 당시 마오쩌둥 주석이 중간에 섰고 오른쪽에 호찌민 주석, 저우언라이 중국 국무원 총리, 김일성 북한 주석 순으로 자리했습니다. 마오 주석의 바로 왼쪽엔 흐루쇼프 서기장이 있었습니다. 이후 김일성 주석은 1954년 중국 건국 5주년 열병식에선 마오 주석 바로 옆자리에 섰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실상 이번 열병식을 통해 김일성·호찌민 주석과 국제적 위상을 나란히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과거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 후 국제 외교 행사를 기피한 것과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김 위원장은 전승절이란 대형 기념행사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 등 각국 정상과 함께하며 '정상국가' 이미지를 꾀하고, 반서방 구도의 핵심 세력임을 부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문가들도 김 위원장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중국이 북한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66년 전 호찌민 주석 자리에 김 위원장이 배치된 데 대해 "지금은 북한이 더 중요한 (중국의) 파트너란 인식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예전보다 베트남의 세가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김 위원장이 다자 외교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중국이)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015년 9월3일(현지시간) 당시 박근혜(오른쪽 세번째)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과 함께 자금성 망루에 올라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5년 시진핑-푸틴-박근혜 순…우원식은 김정은과 악수 나눠
 
한편으론 66년 만에 재현된 북·중·러 톈안먼 망루 장면을 통해 중국은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미·중 신냉전을 여는 역사적 순간을 연출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특히 시 주석이 이번에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을 양옆에 나란히 세운 모습은, 소련이 냉전을 주도한 과거와 달리 이번엔 중국이 '반서방 연대'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북한과 김 위원장의 국제적 위상도 이전에 비해 오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5년 70주년 열병식과 비교해도 큰 변화입니다. 당시 시 주석의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섰고, 박근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옆에 자리했습니다. 또 시 주석의 좌측에는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전직 국가주석이 나란히 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시 주석의 오른쪽에 앉게 된 정상은 푸틴 대통령으로 같지만, 시 주석의 바로 왼쪽 자리는 김 위원장이 차지했습니다. 시 주석 옆에 중국 공산당 인사가 아닌 해외 정상을 배치시킨 점은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위상이 달라졌음은 물론 10년 동안 시 주석에 집중된 중국 권력 시스템을 반증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차 중국 방문에 나선 우원식 국회의장은 톈안먼 망루에서 김 위원장과 같은 앞 열에 앉았지만, 위치는 푸틴 대통령이 위치한 오른편 끝 쪽에 자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과 우 의장의 자리는 상당히 멀어 자연스러운 조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회의장실은 우 의장이 열병식 참관 전 김 위원장을 만나 수인사를 나눴다고 전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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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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