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 대통령에 이어 김민석 국무총리도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습니다. 양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과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미국에 대한 투자가 어렵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인데요. 사실상 대미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 정부 협상팀의 '국익 방어' 명분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대통령 "일본과 다르다"…통화스와프 필요성 강조
김 총리는 25일 공개된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미국 내 한국의 투자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 것"이라며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업들의 조지아주 대미 투자 프로젝트는 어렵다는 점을 피력한 겁니다.
김 총리는 또 미국 정부가 3500억달러(약 490조원) 투자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미국과의 투자 약속 규모가 한국 외환보유고의 70% 이상에 달한다"며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이 없다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미국의 요구는 일본의 5500억달러(약 771조원) 투자 약속과 유사하다"며 "협상단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통화스와프 체결 없이 대미 투자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대통령도 24일(현지시간) 뉴욕의 주유엔 대표부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을 만나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관세 후속 협상과 관련해 "한국은 경제 규모, 외환시장 및 인프라 등 측면에서 일본과 크게 다르다"며 "이런 측면도 고려해 협상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과 같이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베센트 장관은 "이후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현지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외환시장에 관한 주무장관이 베센트 장관이고 이 대통령이 직접 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의 협상 과정에서 중대 분수령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 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어 "그게 안 되면 충격이 너무 크다.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으로 나가지 못하는 필요조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통화스와프와 비자 문제 해결을 일종의 협상 타결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셈입니다. 두 조건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고선 협상에서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쌀과 소고기 등 농축산물에 대한 비관세 문제에 대해선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김 실장은 "(농축산물에 대한) 비관세 관련 부분은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전제"라며 "나머지 영역에서 실질적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임을 분명히 한 겁니다. 김 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고 국익에 부합하며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협상 중"이라며 "시한 때문에 그런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과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럽 차도 관세 확정…경주 APEC서 협상 마무리 '주목'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확정했습니다. 이 관세율은 지난 8월1일부터 소급 적용됩니다. 일본이 미국과 무역 협상을 끝내고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확정한 데 이어 유럽까지 15% 관세율을 적용받게 되면서, 현재 자동차 관세율 25%를 적용받는 한국 자동차산업은 더욱 벼랑 끝에 내몰렸습니다.
현재까지 관세 후속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대미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용범 실장은 "데드라인을 따로 두고 있진 않다"면서도 "APEC 기간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라며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부에서 협상을 추진하는 데 주저하는 부분이 느껴진다"며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뒤통수 맞는 수가 있어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제학계 한 교수는 "미국이 통화스와프 체결을 안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추가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통화스와프를 영구적으로, 전액으로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간은 한시적으로, 금액은 얼마까지로 정하면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