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올 한 해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기조가 추석 이후로도 좀처럼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며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간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누적된 데다 올해 폭염 및 폭우에 따른 작황 부진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경우, 추석을 지나 먹거리 물가가 더욱 폭등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인데요. 특히 최근 들어 식품 기업들이 식료품 가격을 슬며시 올리기 시작한 점도 추후 물가를 추가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추석 이후 정부의 물가 안정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입니다.
소비자물가 2.1%…2개월 만에 2%대 진입
물가 불안은 통계상으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실정입니다. 9일 국가데이터처의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7.06(2020년=100)으로 1년 전 대비 2.1% 상승했습니다.
올해 5월만 해도 1.9%에 그쳤던 소비자물가는 6월 2.2%로 반등했고 7월 2.1%를 기록하며 2%대를 지속했는데요. 지난 8월에는 해킹 피해로 고객 정보를 유출한 SK텔레콤이 통신 요금을 감면함에 따라 휴대전화요금이 1년 전 대비 21% 떨어지며, 소비자물가도 1.7%까지 일시적으로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이 같은 반짝 효과도 사라짐에 따라 소비자물가는 다시 2%대로 올라섰습니다.
이처럼 물가 불안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것은 올 여름 이상 기후 여파로 먹거리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탓이 큽니다. 무엇보다 먹거리 물가의 토대가 되는 신선식품의 경우 올해 전국에 걸친 폭염 및 폭우로 역대급 피해가 더해지면서 물가 불안에 일조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현장에서 판매되는 주요 신선식품의 가격은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쌀(상품 기준) 20㎏ 도매가격은 6만3230원으로 1년 전 4만8260원 대비 32.02%나 뛰었습니다.
또 풋고추는 10㎏ 도매가격이 8만2900원으로 1년 전 6만3645원보다 30.25% 급등했고, 제수용품인 사과(홍로 기준)의 경우 10㎏ 도매가격이 8만1580원으로 전년(4만6800원) 대비 무려 74.32% 치솟았습니다. 또 배(신고 기준)는 15㎏ 도매가가 6만640원으로 1년 전(5만200원)보다 1만원 이상 뛰었는데요.
이렇듯 신선식품은 이상 기후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보니, 폭염이나 폭우가 발생하면 이후 시장에 가격이 상향 반영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폭염·폭우가 빈번한 여름휴가 시즌부터 추석 연휴까지의 시기에는 단기간 먹거리 수요가 폭증하는 만큼, 이에 따른 식량 수급 불균형 역시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사실 전체 지표 물가 상승률이 2%대에서 유지된다는 것은 정부의 안정 목표치 범위에는 해당된다 볼 수 있다"며 "다만 서민들이 직감하는 식료품 물가는 강한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 이들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가공식품 물가…전체 물가 상승 견인차 역할
물가 상승에는 이상기후와 같은 자연적 요인뿐 아니라 식품 기업들의 이기심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이들 기업이 생산하는 가공식품의 가격은 크게 오르면서 서민들의 삶에도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서울 및 경기 지역 내 유통 업체 420곳에서 판매된 37개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28개 품목의 가격은 1년 전보다 평균 3.3%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들 품목 대다수는 사실상 식품 기업들이 제조한 가공식품들이 차지했는데요.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맛김으로 15.8% 뛰었고, 이어 △커피믹스 12% △분유 10.1% △햄 8.6% △달걀 8.3%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가격 상승률 상위 5개 품목의 평균 상승률은 11%에 달합니다.
식품 업체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고환율 여파로 이유로 들며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에 최근 들어 업계는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조심스레 제품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고, 일부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유지하되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꼼수까지 동원하는 상황인데요.
문제는 가공식품 물가가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공식품 물가는 지난달 4.2% 오르며 전체 물가(2.1%)를 0.36%포인트나 끌어올렸는데요. 특히 빵(6.5%), 커피(15.6%) 등의 상승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식품 기업들의 경우 물가 불안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원재료 상승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식품 업체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문제는 상당한 수익을 확보하며 양호한 실적을 거둔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라며 "먹거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점을 감안한다면, 기업들이 가격 조정과 관련해 일정 수준에서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정부는 추석 이후 물가 안정의 책무를 안게 된 상황인데요. 이에 이 같은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물가가) 1.5배 높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식료품, 생활용품 가격만 유난히 높다. 이상하다"며 "힘없는 서민들, 식품 가격을 올려서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만약 있다면 통제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