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를 최고경영자(CEO) '참호'로 규정하고 강력 비판한 가운데 국내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대다수가 현직 회장 시절 선임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39명 중 25명(65%)가 현직 회장 때 선임된 인사들로 나타났습니다. 최초 임기 시작 시점 기준입니다. 과거 회장 체제에서 선임된 사외이사보다 현 회장과 관계가 좀 더 끈끈한 '동고동락'의 관계로 분류됩니다.
나머지 사외이사들은 전임 회장 때 선임된 인사들인데 기본 임기 2년에 1년씩 연임 임기를 더하는 방식입니다. 금융지주는 정관과 내부 규범 등을 통해 사외이사의 최대 재임 기간을 6년(KB금융지주의 경우 5년)으로 제한해놓고 있습니다.
양종희
KB금융(105560) 회장은 지난 2023년 11월 임기를 시작했는데, 양 회장 취임 후 선임된 사외이사들은 전체 7명 중 3명입니다. 최초 선임 기준으로는 조화준·여정성·최재홍·김성용 등 4명은 윤종규 전 회장 재임 때 선임된 인물들입니다.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에서는 사외이사 총 9명 중 4명이 2023년 3월 진옥동 회장 취임 이후 선임된 인사들입니다. 곽수근·김조설·배훈·윤재원·이용국 등 5명은 조용병 전 회장 재임 시절인 2021년~2022년 선임된 사외이사들입니다.
하나금융지주(086790)의 경우 함영주 회장이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함 회장과 임기를 함께하는 사외이사 비율이 높습니다. 함 회장이 지난 2022년 3월 첫 임기를 시작했는데, 사외이사 9명 중 8명이 함 회장 취임 이후 선임됐습니다. 박동문 사외이사(이사회의장)은 김정태 전 회장 재임 때 선임된 인물로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금융지주(316140)에서 사외이사 7명 중 6명이 임종룡 회장 때 선임된 인물들입니다. 윤인섭 사외이사는 지난 2022년 1월 선임됐습니다. 임 회장의 임기 마지막해인 우리금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4명을 대거 교체한 바 있습니다. 우리금융은 민영화 이후 '과점주주' 체제인데요. 사외이사 7명 중 4명이 과점주주들의 추천을 받는 구조입니다.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사외이사 7명 가운데 4명이 이찬우 회장과 임기를 같이 시작했습니다. 농협금융은 100% 지분을 보유한 농협중앙회가 직간접적 영향을 행사하고 있어 타 금융지주와 동일 선상에 비교하기는 힘듭니다.
앞서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이사회 운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이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 일종의 참호를 구축하는 분들이 보인다"며 "오너가 있는 제조업체나 상장 법인과 별다를 게 없어지면 금융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 부분에 대해 예의 주시하면서 필요시 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장 시각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과거처럼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입니다. 윤석열정부 시절에도 이복현 금감원장이 이사회 참호 구축을 문제 삼으며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을 문제시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요 금융지주 회장 상당수가 연임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지난 수년간 금융당국은 대규모 금융사고가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에 대해 사외이사들이 감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해왔습니다.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독립성을 키우라고 압박하면서, 금융지주 이사회 개편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을 경우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재임 기간을 모두 채웠습니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향후 거취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본인 재임 시 선임한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친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사외이사 등 이사회 구성, 운영에 대해 금융당국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이사회 변화 폭을 키워왔다"며 "자연스레 현직 회장 때 선임된 사외이사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내 사람을 앉히려 한다'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