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미국 성인들, '술 없이도 괜찮다'로 변화 중

하버드대 발표, "팬데믹 과음에서 '절제와 자각'으로"
웨어러블, 비만 치료제도 절제에 기여

입력 : 2025-10-27 오전 9:32:24
영국의 공공보건단체 '알코올 체인지 UK'가 펼치는 금주 캠페인. (사진=Alcohol Change UK 홈페이지 캡쳐)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발적 금주 캠페인이 있습니다.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와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가 대표적입니다.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는 ‘술 없는 1월’이라는 의미로, 새해 첫 달인 1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말자는 운동입니다. 지난 2013년 영국의 공공보건 단체 '알코올 체인지(Alcohol Change UK)'가 처음 제안했습니다. 연말연시 폭음 이후 몸과 마음을 ‘리셋(reset)’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는데, SNS 챌린지처럼 공유가 쉽고, “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경험이 건강 캠페인으로 이어지면서 빠르게 확산돼 왔습니다. 참가자들은 한 달 금주 후 수면 질 향상, 체중 감소, 집중력 회복, 불안 감소 등의 변화를 말합니다. 영국 공중보건국(PHE)은 ‘드라이 재뉴어리’ 참여자의 70% 이상이 이후 6개월간 음주량을 줄였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캠페인입니다.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는 직역하면 ‘술 없이 보내는 10월’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암연구 재단인 '맥밀란 캔서 서포트(Macmillan Cancer Support)'가 모금 캠페인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참가자들은 10월 한 달 동안 술을 끊고, 그 기간 동안 받은 응원이나 후원금을 암 환자 지원 기금으로 기부합니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에서도 자발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두 번째 금주의 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들 두 캠페인은 ‘절대 금주’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 점검, 자기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
 
“술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과 술의 관계를 돌아보는 과정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절주 경험을 넘어, 건강·정신·사회문화적 변화를 상징하는 세계적 현상이 된 셈입니다.
 
미국 성인 음주 비율 67%(2022년)54%(2025년), 역대 최저 기록
 
최근 하버드대 연구진은 ‘드라이 재뉴어리’가 이끈 ‘96년 만의 음주율 최저’라고 발표해서 이 변화를 뒷받침했습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음주 문화가 1930년대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음주 비율이 5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갤럽이 1939년 처음으로 미국인의 음주 습관을 조사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수치는 다년간 지속된 추세의 최신 결과로, 2022년 67%에서 2023년 62%, 2024년 58%를 거쳐 현재 54%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팬데믹 기간 급증했던 음주가 불과 3년 만에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단순한 금주 캠페인을 넘어선 사회적 전환이 있습니다. 일시적 금주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스스로의 음주 습관을 재평가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절제 지향)’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을 덜 마시면 뇌도 달라진다”…신경과학이 뒷받침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의 마리사 실베리(Marisa Silveri) 교수는 “수십 년간의 신경과학 연구가 이제야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적은 양의 술도 수면, 기분,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점점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베리 교수 자신도 팬데믹 직후 ‘드라이 재뉴어리’를 시작했다가 500일 넘게 술을 끊으며 뇌 건강의 변화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수면 질이 높아지고 기분이 안정되는 등 신경과학적 데이터와 일치하는 변화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웨어러블 기술의 확산도 이러한 ‘절주 혁명’을 뒷받침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트니스 트래커(Fitness tracker)는 이제 단순히 걸음 수만 기록하는 장치가 아니라, 술 한 잔의 생리적 영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건강 거울’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음주 후 심박수 상승, 수면 장애, 혈압 변화가 수치로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 절주를 선택하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하루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통념 깨져
 
최근 여러 연구는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심혈관에 이롭다”는 기존 통념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외과 총괄 사무실(U.S. Surgeon General’s Office)은 올해 1월 “알코올은 흡연, 비만에 이어 세 번째 주요 암 원인”이라고 경고하며, “하루 한 잔의 와인조차 유방암, 구강암, 인두암 위험을 높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실베리 교수는 “알코올은 인체 생리에 ‘도전’을 주는 물질이지, 어떤 긍정적 변화를 주는 증거는 없다”며 “소량이라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GLP-1 약물이 ‘술의 유혹’을 줄인다”
 
최근 주목받는 항비만 치료제 GLP-1 계열 약물(오젬픽, 위고비 등)도 음주 감소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중독정신의학과의 조지 스즈키(Joji Suzuki) 교수는 “의도하지 않게 술에 대한 갈망이 줄었다는 환자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알코올 중독 치료제로 임상시험이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 약물은 식욕뿐 아니라 음주 욕구를 억제하는 신경 경로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하바드대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스즈키 교수는 “만약 임상에서 입증된다면, 수십 년 만에 알코올중독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20~30대의 음주율도 ‘뚝’
 
하버드 의대의 간질환 전문가 긍지 사보(Gyongyi Szab) 교수는 “음주율 하락은 세대 교체의 징후”라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20~30대의 음주율은 10년 전보다 꾸준히 감소했고, 2023년 이후에는 59%에서 50%로 급락했습니다. 
 
그녀는 “건강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생활 방식이 부모 세대의 음주 문화를 대체하고 있다”며 “식습관·운동·절주가 모두 하나의 ‘웰빙 문화’로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음주 문제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음주율이 남성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며, 알코올성 간질환이 여성에게서 증가하는 추세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스즈키 교수는 “전반적인 절주 흐름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고위험 음주층은 남아 있다”라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는 ‘완전 금주’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절제’”라고 강조합니다. 달라진 회식 문화를 비롯해서 우리나라도 음주 문화가 상당히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와 ‘소버 옥토버(Sober October)’의 각성이 우리 사회에도 더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2024년 보건복지부가 전개한 음주 폐해 예방 및 절주 문화 확산 캠페인 포스터 일부. (사진=보건복지부)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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