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이재명정부에서 잇따른 부동산 정책을 통해 월세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 전세를 월세로 바꿀 경우 가계 부담이 12.5%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클 전망입니다. 갭투자와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세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금융당국이 '집값 잡기'와 '금융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서민의 생활비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월세 전환 시 월 23만원 추가 부담
28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세 차례 부동산 정책 발표 이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전세 옵션이 줄고, 월세 계약으로 전환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값은 5억5167만원입니다. 전세 거주 시 월 약 184만원이던 금융 비용(대출 이자, 연 4%)이 월세로 전환(법정 전환율 4.5%)하면 약 207만원으로 증가합니다. 전세 대비 월세 부담 증가액은 한 달에 약 23만원, 부담률로는 약 12.5%에 달합니다. 최근에는 월세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실제 월세를 구할 때 부담액은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 매물은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연초 대비 23.2% 감소했습니다. 반면 보증부월세·반전세 등 월세 거래 비중은 60%를 돌파해 2021년 41% 수준이던 월세 비율이 불과 4년 만에 20%p 가까이 뛰었습니다.
시장에선 전세제도 폐지 시 서민 가계의 현금흐름 악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서민 가구 입장에서는 전세금 마련보다 월세 납부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대출을 조이면 세입자들은 전세를 구하기 어렵고, 임대인들은 보증금을 낮춘 대신 월세를 높인다"며 "급격한 전세 축소는 임차인 부담을 폭증시킬 수 있고, 소득 절반이 월세로 소비될 경우 서민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습니다.
또 "지금 시장이 완전히 막혀 있다. 토지거래허가제에 전세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전세 매물이 급감했다"며 "세입자들이 갈 곳이 없고, 결국 월세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임대차 3법으로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고,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원하면 집주인이 연장을 해줘야 하니 임대인 입장에서도 전세를 내놓기가 겁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정부가 강도 높은 부동산 대출 조이기를 통해 월세화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전세제도는 고통이 있더라도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 전세제도 폐지를 장기적으로 금융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이 부동산 레버리지를 확대시켜 금융 리스크를 키우고, 생산적 금융을 저해한다는 주장입니다.
한 시민이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식 월세? 소득 격차 고려 안해
정부 일각에선 월세 중심 임대주택 구조인 미국을 모델로 언급하지만, 소득 격차를 감안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교입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8만3660달러(약 1억1200만원)로, 한국의 3만6624달러(약 4900만원)의 2.3배 수준입니다. 한국의 약 2배 이상의 평균 소득을 가진 미국의 경우 높은 소득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반면 한국은 소득이 절반 수준인데 월세 전환 시 월 200만원을 넘는 주거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실질적인 구매력 차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훨씬 가혹한 구조인 셈입니다. 소득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서 비싼 월세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또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미국처럼 월세로 가자'는 주장은 소득 격차를 무시한 위험한 단순화"라며 "미국 뉴욕 맨해튼처럼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비싸 월세로 사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한국은 수도권 대부분이 고가 주택 지역인데 모두에게 월세를 강요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살라는 말이냐"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세가 사라지면 저소득층은 사실상 평생 월세 세입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전세 폐지 이후의 월세 사회는 '저소득 고지출 구조'로 전락할 것이란 견해도 있습니다. 전세가 주거비 절감의 역할을 해왔던 만큼, 소득이 제자리인 상황에서 전세를 급격히 없애면 월세가 주거비 폭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월세는 매달 현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전세를 없애야 한다'는 접근보다, 보증금 보호 강화·임대차 정보 공개·전세대출 심사 강화 등으로 전세제도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정부는 국민들에게 월세로 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시장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국민의 주거 이전의 자유를 사실상 봉쇄하는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주택시장 유동성을 막아버려 매물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며 "지금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리 없다"고 했습니다.
안 교수는 "정작 공직자나 정책 결정자들은 과거에 갭투자·다주택으로 이익을 봐놓고, 이제 와서 청년 세대에게는 '월세로 살라'고 강요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며 "청년들이 어떻게든 돈을 모아 전세를 끼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데, 월세 거주 청년들이 '이 상태로 어떻게 결혼하냐'고 묻는 현실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주택 가격 안정의 핵심은 공급"이라며 "전세제도를 없애는 식의 대증적 처방이 아니라, 중장기적 공급 확대와 금융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