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핵무기 실험'(핵실험)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에 따라 미·중·러 3국의 핵을 둘러싼 치킨게임이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동시에 동북아시아(동북아) 국가 간 '군비경쟁'도 불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정부의 핵추진잠수함(핵잠) 건조 빗장이 해제됐기 때문인데요. 앞으로 동북아 안보 환경이 재편될 것으로 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써밋'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뉴시스)
중·러, 무기체계 '과시'에…3강 '핵경쟁' 촉발
3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미국 <CBS> 프로그램 '60분'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지구를 150번은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도, 중국도 모두 핵실험을 하고 있지만, 공개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며 핵실험 의지를 거듭 드러냈습니다. 미국이 핵실험을 재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그것(핵무기)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실험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러를 겨냥, 미 국방부에 "다른 국가와 동등한 기준으로 미국도 핵실험을 진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핵실험 의지를 재차 피력한 겁니다.
미국·중국·러시아는 지난 1996년 유엔(UN) 총회에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서명했는데요. 해당 조약에는 '모든 핵무기 실험 폭발 또는 기타 핵폭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몇몇 주요 국가가 비준하지 않아 조약은 발효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핵실험은 지난 1992년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진행한 게 마지막입니다. 러시아(당시 소련)는 1990년에, 중국은 1996년에 마지막 핵폭발 실험을 했습니다. 이후 미·중·러는 공식적으로 핵실험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컬럼비아'(SSN 771·6900t급). (사진=뉴시스)
대중 견제 동맹국과 분담…강훈식 "북에 상응 조치 차원"
미국의 이번 핵무기 실험 재개 의사는 러시아와 중국과의 경쟁에 뒤처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전 세계 군비경쟁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서 러시아는 지난 10월 사거리 1만4000km에 달하는 신형 핵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와 핵추진 초대형 어뢰인 포세이돈을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중국도 지난달 28일 발표한 제15차 5개년 경제사회 발전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전략적 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러와의 무기체계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실험 발언과 강대국의 경쟁 심화는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경쟁도 함께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핵잠 건조 요구를 하루 만에 승인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핵잠 건조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호주 역시 미국과 지난 2021년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안보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관련 기술을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진 대중 등 견제 부담을 한국 등 동맹국과 분담하기 위한 전략적 계산으로 해석됩니다. 앞으로 일본과 대만도 미국에 핵잠 건조 승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인데요.
결국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국가 간 군비경쟁이 촉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군사적·전략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핵잠 도입이 필요하지만 주변국과 외교적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미국의) 핵잠 승인은 군비경쟁을 만들어내거나 동아시아 위험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라며 "북한이 핵잠 건조를 발표한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상응 조치를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