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관세' 철강에 5700억 투입…'구조조정' 칼도 뺐다

벼랑 끝 K-철강…정부 "산업 대전환 골든타임"

입력 : 2025-11-04 오후 6:17:27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을 잃은 한국 철강이 '미국발 고율 관세'까지 겹치며 수렁에 빠지자, 정부가 사실상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쐈습니다. 57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과 함께 '범용 제품 설비 감축'을 공식 과제로 못 박았습니다. 대신,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구상입니다. 석유화학에 이어 칼날이 철강으로 향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철근 줄이고 특수강 키운다…'수소환원재철'도 본격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지원에는 지난 9월 발표된 △긴급 융자 대책(200억원)에 더해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4000억원) △이차 보전 사업(1500억원)을 신설했습니다. 
 
미국의 50% 철강 관세와 유럽연합(EU) 세이프가드 등에 대해선 저율관세할당제(TRQ) 전환을 요청하는 등 공식·비공식 협의를 이어갑니다. 
 
정부는 중국 등에서 생산원가보다 싸게 수출되는 '불공정 저가 철강재'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덤핑방지관세 적용 대상을 제3국과 보세 구역을 경유한 우회덤핑까지 확대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철근·형강 등 범용재 중심의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투자를 본격화합니다. 세제 인센티브를 연계해 자발적인 설비 감축을 유도하고, 필요할 경우 '철강특별법' 제정도 검토합니다. 
 
철근은 수입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 수준에 불과해, 그동안 시장 경쟁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설비 감축도 미진해, 정부가 설비 조정의 중점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차세대 성장 축은 '특수탄소강'입니다. 앞서 정부가 선정한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10대 핵심 품목에 2000억원을 투입,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현재 12%에서 20%까지 높인다는 목표입니다. 
 
특수탄소강은 범용 철강보다 단가가 높고,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품군입니다. 조선·에너지 산업처럼 극한 환경에서 버텨야 하는 장비에 쓰이고, 자동차·방산·우주항공 분야에서는 초고강도와 경량화가 필요한 핵심 부품 소재로 사용됩니다.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81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도 본격 추진됩니다. 질 좋은 철을 얻으려면 산소 제거가 핵심인데, 이 작업에는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석탄 코크스가 쓰이고 있습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철을 만들고, 배출물로는 수증기만 배출합니다. 탄소 배출을 기존 대비 95%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철강의 절반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는 만큼, 탄소 감축 기술 확보는 경쟁력 유지의 필수 조건입니다. 유럽연합(EU)이 내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면서, 한국에서 수출되는 철강에는 배출된 탄소만큼 사실상 '탄소세'가 붙게 됩니다. 미국도 유사한 방식의 '해외 오염 관세법'을 검토 중입니다. 
 
구윤철 부총리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윤철 "골든타임 허비하면 조력자로 남기 힘들어"
 
한국의 6위(2024년 기준) 수출 주력 품목인 철강은 최근 '3중고'에 직면해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수요 구조 재편 흐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데다, 국내 건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한 영향입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까지 맞았습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철근 수요는 798만t으로, 2021년(1132만t)에 비해 약 30% 급감했습니다. 현재 수요가 국내 생산능력(1200만t)의 50~60%에 불과해, 절반 가까운 설비가 사실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철강 수출액은 전년 대비 24% 감소했습니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사업 재편이 지지부진한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업계의 진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있다"며 "연말까지가 골든타임인데, 이 시기를 놓친다면, 정부와 채권금융기관도 조력자로만 남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배가 기울 때 자기 짐만 지키려다, 결국 침몰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며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타당성 있는 사업 재편은 정부도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석유화학 사업 재편은 지난 8월 업계 자율협약 체결 이후 최근 대산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일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9월에는 금융권도 공동협약을 맺어 금융 지원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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