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올해 국회에서 정책금융기관 관련 입법이 일부 전개됐지만 성과와 속도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관 관련법 개정안은 22대 국회 들어 단 한 건의 법안도 발의되지 않았고, 산업·공급망 관련 핵심 제도들도 국회 통과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택·벤처 등 일부 분야에 입법이 집중되면서 기관 간 입법 편차도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발의된 정책금융기관 관련 법안은 총 34건입니다. 이 가운데 27건은 7월까지 발의된 것이고 이후 3개월여 동안 추가된 법안은 한국벤처투자 4건,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 각 1건, 총 7건에 불과합니다. 또 올해 발의된 법안 중 공포된 것은 산업은행법·주택도시기금법·해양진흥공사법 개정안 단 3건뿐입니다.
올해 기관별 발의 현황을 보면 주택도시보증공사 및 한벤투 관련 법안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 각 4건, 수출입은행 3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신보 2건,
기업은행(024110)·한국주택금융공사·기술보증기금 각 1건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즉 벤처기업 및 주택 정책금융기관 관련 입법이 각각 10건과 9건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 관련 법안 발의는 올해 들어 전무합니다. 특히 무보와 캠코 관련 법안은 22대 국회 전체를 통틀어 발의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22대 국회 전체로 확장하면 총 67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 중 공포된 것은 6건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50건은 여전히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고, 11건은 대안반영폐기 처리됐습니다.
AI·딥테크 겨냥한 모태펀드 구조 손질…벤처투자법 발의 활발
하반기 국회에서는 벤처 및 전략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안이 일부 발의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태조합의 존속기한 연장, 벤처투자에 활용 가능한 기금 범위 확대, 전략산업 지원 기반 마련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이 대통령령을 통해 고용보험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 44개 기금에 한해서만 벤처투자가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윤 의원은 벤처투자에 활용 가능한 법정기금을 국가재정법상 모든 기금으로 확대하고, 출자한도 역시 10%에서 15%로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2035년에 종료될 예정인 모태조합의 존속기한이 자조합보다 짧아 장기투자가 어려운 문제를 지적하며, 모태조합의 존속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인공지능(AI) 등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에 자금을 공급할 경우, 자조합의 존속기간이 모태조합을 초과해버리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입니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은 모태펀드의 존속기간을 법률로 제한하지 않고 규약에 기본 30년을 명시하되, 필요 시 조합원 승인을 거쳐 10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딥테크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를 유도하고 벤처시장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창업기획자와 개인투자조합의 연대책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시행령에 있던 보호 규정을 법률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은 지난 8월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업은행 내에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설치해 금융 규제와 무관하게 전략기술 분야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해당 법안은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한편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수출입은행이 대출·보증과의 연계 없이도 해외사업에 직접 출자하거나, 혁신산업에 대한 간접투자를 위해 집합투자기구에 출자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게 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신용보증기금의 유동화수익증권 발행 시 적용 제외 조항을 명시해 발행의 법적 안정성을 높이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10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입법 적고 편중 심화…정책금융 제도 개선 '빨간불'
올해 발의 법안 중 공포된 법안은 △산업은행 내 전략기금 설치를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윤한홍 정무위원장),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HUG가 보유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건수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맹성규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해운항만업 범위에 예선·도선업을 추가해 지원 근거를 마련한 해양진흥공사법 개정안(주철현 민주당 의원) 등 3건입니다.
반면, 정부 국정 과제 및 정책 목표로 강조돼온 '공급망안정화기금' 관련 입법은 계류 중입니다. 이종욱(국민의힘)·신영대(민주당) 의원이 올해,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각각 발의한 관련 법안은 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대안반영폐기됐습니다. 현재 수출입은행이 공급망안정화기금에 출연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대출·보증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수익성을 확보할 경우 법인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한 위원회 대안이 준비 중입니다.
이처럼 정책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위기 대응 기능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입법 노력은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 입법이 지연되는 근본 원인으로 실현 가능성과 무관한 실적 중심 입법, 정치권의 낮은 관심, 기관 간 업무 조정 실패 등을 지적합니다.
홍형득 강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금융기관 관련 법안은 결국 정부 부처나 위원회가 주도하는 법안만 통과되는 구조"라며 "정치인들의 관심이 낮고 재정건전성이나 효율성 문제가 행정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법안 발의 자체가 드물고 공론화도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책금융 입법은 '법안 발의 건수'라는 실적을 쌓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고, 기관 간 업무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국회가 이에 대한 합의 형성을 하지 못한다"며 "기관장들도 조직의 이해가 얽힌 문제에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장관이나 금융위원장 등이 직접 조정하는 구조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5월26일 서울 종로구 주택도시보증공사 북부지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5월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의 후속 조치로 임대인의 다주택 여부, 전세금반환보증 사고 이력 등을 임차인이 사전 확인할 수 있도록 ‘임대인 정보 조회 제도’를 같은 달 27일부터 확대 시행했다. (사진=뉴시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