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체제서 '신뢰도 추락'…KT 낙하산 CEO 흑역사

경영 부실 쌓이며 해킹까지 더해진 김영섭 체제
정권 따라 흔들린 KT 20년, 기업 이미지도 '하락'
스펙보다 'KT 아는 사람'이 CEO로 '적격' 여론

입력 : 2025-11-12 오후 3:47:10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윤석열 정권기 낙하산 논란 속에서 출범한 현 김영섭 KT 대표 체제는, 해킹 사태와 은폐 의혹까지 겹치며 '신뢰도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끝에 이제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의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면서 국내 대표 통신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급격히 흔들리는 과정을 지켜본 내·외부 인사들은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최고경영자(CEO)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차기 대표이사 공모 시작과 더불어 KT 안팎에서 '최소한 낙하산 인사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지금까지 총 6명의 CEO(내부 출신 3명, 외부 출신 3명)이 회사를 이끌어왔으나, 외부 출신 상당수가 낙하산 논란에 휘말리며 조직 안정과 혁신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KT 광화문 사옥. (사진=뉴스토마토)
 
최근 사례를 보더라도, 구현모 전 대표 체제 이후 윤석열정부 실세들의 입김으로 KT 수장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영섭 현 대표는 자신의 임기 동안 본업인 통신보다 인공지능(AI) 중심의 사업 구조 강화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연대에 공을 들였지만, 정작 국내 국가대표 AI 프로젝트에서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KT 조직을 잘 알지 못했던 김 대표는 인력 감축과 호텔 매각을 추진하며 자산 유동화로 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2분기 영업이익 1조원 돌파와 3분기 영업이익 16% 증가는 전임 대표 시절 추진된 부동산 분양 이익에 힘입은 결과였지만, 김 대표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없고, KT가 호텔업이 본업이 아니"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유동화해 본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반드시 해 나가야 할 기본"이라고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KT 전·현직 임원들은 "자산은 후배들을 위해 남겨둔 최후의 보루"라며 김 대표가 손쉬운 방법으로 숫자 경영에 연연한다고 비판해왔습니다. 
 
2년 넘게 이어진 경영 부실이 쌓이면서 내부 통제력은 약화됐고 이 과정에서 무단 소액결제와 대규모 해킹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 직후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산하 서버 점검과 네트워크 관리 부서가 따로 움직이며 컨트롤타워 기능이 마비되는 등 사후 대처도 미흡했다는 점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결국 분절된 보안 조직과, 현장과 경영진의 소통 단절은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웠고, 은폐 의혹까지 이어지며, KT의 신뢰도는 또 한 번 추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영섭 KT 대표(가운데)가 지난 9월11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웨스트 사옥에서 열린 소액결제 피해 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KT의 '낙하산 CEO 흑역사'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민영화 초기만 해도 이용경(2002~2005년), 남중수(2005~2008년) 사장 등 KT 내부 출신이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나,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부터 정권 교체 때마다 외부 낙하산 인사가 투입되며 조직은 번번이 흔들렸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 이석채 전 회장도 현재의 김 대표처럼 주요 자산 매각에 집중했습니다. 수천억 원을 투자했던 무궁화 2호·3호 위성을 홍콩 소재 위성사업자인 ABS에 수억원으로 매각해 헐값 매각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KT 사옥 30여곳을 감정가보다 800억원대 싸게 팔아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6000여명을 구조조정하는 와중에도,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던 이태규, 이명박정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했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등을 영입하는 등 정권 코드 인사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취임한 삼성전자(005930) 반도체연구소장 출신 황창규 전 회장은, 처음엔 기술경영 이미지로 기대를 모으며 5G 전도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황 전 회장에 대해선 내부에서 의견이 갈릴 만큼, 공과가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이후 내부 승진으로 선임된 구현모 전 대표가 조직 안정화를 시도했으나,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낙하산 논란과 연임 불발을 겪으며 리더십 공백을 맞았습니다. 
 
결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부 인사가 투입되고, KT의 자산 매각·조직 해체가 반복된 결과가 지금의 위기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KT에 정통한 관계자는 "도덕적으로 투명한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며 "회사 자산을 개인의 목표용으로 이용하는 낙하산 CEO는 더는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KT 임직원들은 "이제는 회사를 잘 아는 실무형 CEO가 와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화려한 스펙이 아닌 경영 경험과 성과가 검증된 인물이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KT 공모에 나선 한 인사는 "AI 대전환 시대에 6개월은 10년에 해당한다"며 "KT의 기술과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가 첫 번째 KT CEO로 요건"이라고 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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