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18~21살 때 초가공식품 피해야

독립적 식습관이 생기는 시기
“배부른데도 계속 먹게 된다”

입력 : 2025-12-15 오전 10:12:24
미국의 젊은 세대가 빠르게 살이 찌고 있습니다. 국제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실린 한 분석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미국의 15~24세 인구 가운데 3명 중 1명은 비만 기준에 해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유전이나 운동 부족, 사회·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핵심 중 하나는 식단, 그 중에서도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입니다.
 
그런데 “같은 초가공식품이라도 연령에 따라 인체 반응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 연구진은 지난 11월 학술지 <비만학(Obes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18~21세 젊은 성인이 초가공식품에 노출될 경우 ‘배고프지 않은데도 더 먹게 되는 경향’이 뚜렷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18~21세는 부모의 식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식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여서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냉동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왜 21세 이하만 더 먹을까”
 
연구진은 체중이 최소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18~25세 남녀 27명을 모집해, 아주 엄격하게 설계된 식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두 가지 식단을 각각 2주씩 경험했습니다. 하나는 전체 열량의 81%를 초가공식품으로 구성한 식단, 다른 하나는 초가공식품이 전혀 없는 식단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두 식단이 가공 여부만 다를 뿐 열량, 단백질·지방·탄수화물 비율, 섬유질, 당류, 에너지 밀도, 비타민·미네랄 등 22개 영양 특성을 거의 동일하게 맞췄습니다. 연구를 이끈 브렌다 데이비(Brenda Davy) 교수는 “기존 연구들이 갖지 못했던 수준의 정밀한 통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각 식단을 마친 뒤 참가자들은 약 1800kcal(미국 표준 아침 식사 칼로리의 4배)에 달하는 ‘무제한 뷔페식 아침 식사’를 제공받았고, 이후에는 ‘배부른 상태에서의 간식 섭취’를 보기 위한 별도의 실험이 이어졌습니다. 전체 참가자를 놓고 보면, 두 식단 사이에 총 섭취 열량이나 음식량의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령별로는 그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초가공식품 식단을 섭취한 18~21세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더 많은 열량을 섭취했고, 식사 직후에도 간식을 계속 먹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에 22~25세 그룹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의 핵심 중의 하나는 ‘왜 먹었느냐’였습니다. 공저자인 알렉스 디펠리체안토니오(Alex DiFeliceantonio) 교수는 “18~21세 참가자들은 이미 충분히 식사를 마친 상태에서도 간식을 계속 섭취했다”며 “이른바 ‘배고픔이 없는 상태에서의 음식 섭취(eating in the absence of hunger)’는 청소년기나 청년기 이후 체중 증가를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이전 연구들에 따르면, 배고픔과 무관한 섭식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중 증가와 비만 위험을 높이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합니다. ‘먹는 양’보다 중요한 비만의 위험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는 초가공식품 노출이 바로 그 행동을 촉진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과거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초가공식품을 자유롭게 제공했을 때 섭취량 증가와 체중 증가가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더 먹어서 살이 찐 것인지, 살이 쪄서 더 먹게 된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초가공식품이 청년층이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먹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미지=챗GPT 생성)
 
반면 이번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의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오직 ‘식품의 가공 정도’만을 변수로 삼아 식욕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디펠리체안토니오 교수는 “이 덕분에 초가공식품이 에너지 섭취 행동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다 명확히 볼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연구진이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연령입니다. 18~21세는 부모의 식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식습관을 형성하고, 동시에 뇌의 보상 및 자기조절 회로가 여전히 발달 중인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음식 환경은 향후 수십 년간의 식사 패턴과 체중 궤적을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데이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짧은 기간의 실험이지만, 만약 이런 섭취 증가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청소년기 후반과 청년 초기야말로 초가공식품의 영향을 가장 면밀히 살펴봐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진은 향후 연구 과제로 ▲실험 기간 연장 ▲더 어린 연령층 포함 ▲현실에 가까운 ‘상시 접근’ 환경 ▲뇌영상 및 생체지표 분석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초가공식품이 뇌의 보상 시스템과 자기조절 기능에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 줄여야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꼽은 초가공식품은 탄산음료, 달콤하거나 짭짤한 포장 간식, 초콜릿, 사탕(과자류), 아이스크림, 대량생산된 포장 빵과 번(buns), 마가린 및 기타 스프레드, 쿠키(비스킷), 페이스트리, 케이크 및 케이크 믹스, 아침용 시리얼, 사전 조리된 파이, 파스타, 피자 요리, 가금류 및 생선 ‘너겟’과 ‘스틱’(nuggets and sticks), 소시지, 버거, 핫도그 및 기타 재구성 육류 제품, 분말 및 포장된 ‘인스턴트’ 수프, 면류, 디저트, 기타 다수 제품입니다.
 
초가공식품은 미국 청년층 식단의 55~65%를 차지하며, 청소년의 대사증후군, 심혈관 건강 악화 및 기타 질환과 연관성이 확인됐습니다. 한국 청년층의 식단에서 초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는 비만 예방 정책과 청년층의 식생활 습관과 식단 결정이 영양 성분과 더불어 ‘가공 정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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