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월급제 '빨간불'…"최저임금도 못 받는 월급제 웬 말?"

국회서 주 40시간제 예외조항 두는 택시발전법 개정안 발의
서울 외 전국 확대 적용도 2년 다시 유예하는 부칙도 추가해
택시지부 "개정안, 최저임금 '보장한다'는 법 취지 어긋난다"

입력 : 2025-12-18 오후 4:42:19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내년 8월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었던 택시월급제(전액관리제)에 빨간불이 커졌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택시노동자들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한 택시발전법을 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40시간 미만으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한 겁니다. 공공운수노조는 개정안이 실제 일한 시간과 달리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고정급을 지급하는 업계 관행을 막고, 택시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손명수 민주당 의원과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지난 12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에선 현행 법인택시 노동자들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도록 한 데 대해 '일반택시운송사업자와 근로자대표가 합의한 경우, 사업자가 보유한 면허대수의 100분의 40 이내에서 소속 택시운수종사자의 소정근로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라는 단서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택시발전법 제11조의 2(택시운수종사자 소정근로시간 산정 특례)는 '일반택시운송사업 택시운수종사자의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 제58조 1항과 2항에 따라 정할 경우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정해야 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사업자들이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해 임금을 적게 주는 걸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지난 2019년 8월 국회를 통과해 2021년부터 서울 지역에서 먼저 시행 중입니다. 내년 8월 전국에도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이번 개정안엔 주 40시간제를 다시 2028년 8월로 연기하는 부칙까지 추가됐습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가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택시월급제 무력화 개정안 상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가 개정안을 낸 취지는 택시업계의 경영이 악화된 현실을 고려, 일부 소정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하는 조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운송수입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에서도 제도가 온전히 정착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서울 외 지역에서 주 40시간제를 도입하는 건 당장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택시발전법을 통해 도입된 택시월급제를 무력화하는 시도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택시월급제는 택시노동자가 운송수익 전액을 회사에 반납하고, 매월 고정급을 받는 제도입니다. 택시를 배정받는 대가로 수입과 무관하게 일정 금액의 사납금을 회사에 내는 사납금제는 지난 2019년 택시발전법 개정으로 폐지됐습니다. 사납금제가 택시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 등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택시월급제가 도입되고 택시발전법 개정을 통해 주 40시간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개정안은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해 최저임금법을 잠탈해온 불법행위를 합법화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해야 할 최저임금법에서 택시산업을 배제시키면서 최저임금법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주 40시간제가 우선 적용되고 있지만, 서울에서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처음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영업 급감을 핑계로, 2023년 이후에는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인한 인력 부족을 이유로 정부와 서울시가 제도 정착을 위한 지휘 감독을 하지 않고 법 위반을 용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 방영환 열사 대책위원회가 지난해 2월 서울시청 앞에서 방영환 열사 장례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구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하는 택시월급제는 이미 서울에서 시행되는 중임에도, 현장에선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은 택시월급제가 현장에 정착하는 걸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택시사업자들은 사납금이 폐지된 뒤에도 기준금을 만들어 일일 목표 기준금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만큼 임금에서 제외하는 '변종 사납금제'를 운영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23년 9월 택시노동자인 고 방영환씨는 택시 완전월금제와 임금체불 해결 등을 요구하며 분신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청은 지난달 23일 고 방영환씨 사건을 계기로 서울 법인택시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택시사업자 10곳 중 7곳이 전액관리제(월급제)를 지키지 않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252개 법인회사 중 173개사(68.7%)가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18일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직장 내에서 (주 40시간 규정을) 예외로 둘 수 있게 하는 건 임금 차별이고, 국가가 법으로 사기업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괴상한 개정안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예외 인정의 배경으로 드는 저성과자는 단체협약에서 징계나 해고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법으로 굳이 무리하게 사업자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이어 "서울 외 나머지 지역에서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겠다는 건 택시노동자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며 "주 40시간 월급제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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