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01월 7일 23:59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가 지난해 상반기 정점을 찍고 하반기 일부 회복되는 흐름을 보였으나 올해는 수요 둔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들은 이러한 전망을 증명하듯 전기차 생산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국내 배터리사와의 대규모 계약을 해지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전기차로의 전환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견고하다. 중장기 성장성을 믿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IB토마토>는 올해 전기차와 관련 산업 전반의 업황을 짚고, 향후 흐름을 전망·분석해본다. (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전기차 수요 둔화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글로벌 완성차 및 배터리 업계가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그간 K-배터리의 성장을 지탱해 온 수조 원대 장기 수주 잔고가 오히려 기업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규모 계약 해지와 가동률 저하 이슈가 본격화되면서 그간 쌓인 배터리 수주잔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전기차 전략 ‘U턴’
최근 K-배터리에 닥친 위기는 잇따른 대규모 공급 계약 취소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지난해 12월, 포드와 체결했던 약 9조 6000억원 규모(2027~2032년, 75GWh)의 장기 배터리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이는 포드의 전기차 전략 변경에 따른 결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달 미국 프로이덴베르크 계열 FBPS와의 약 3조 9200억원 규모 모듈 공급 계약도 사실상 전면 취소되면서, LG엔솔이 단 한 달 만에 날린 계약액은 13조원 중반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최근 연간 매출의 20% 이상에 해당하는 물량이 증발한 것이다.
이러한 계약 해지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들의 급격한 전략 선회에 있다. 한때 순수 전기차(BEV)로의 조기 전환을 선언했던 완성차 기업들이 최근 수요 둔화와 고금리, 보조금 축소 등을 이유로 하이브리드(HEV)와 내연기관(ICE) 비중을 다시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중후반부터 수요가 일부 회복되는 듯했으나 다시 분위기가 바꼈다"면서 "최근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 국내 배터리사의 잇따른 수주계약 해지가 이를 방증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역시 중장기적인 전동화 계획은 유지하고 있지만, 2028년까지 하이브리드 모델 수를 기존 6종에서 9종으로 확대하는 등 HEV 투자 비중을 높이는 ‘혼합 포트폴리오’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는 순수 전기차 단독 전략 대신 하이브리드 SUV 출시를 검토하는 등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모습이다.
‘빈집’ 된 북미·유럽 공장…고정비 폭탄 ‘전운’
문제는 국내 배터리사들이 수주 확정을 전제로 북미와 유럽에 지은 대규모 현지 공장들이다. 장기 공급 계약을 믿고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해 공장을 완공했으나, 전기차 수요가 계획에 크게 미달하면서 실제 가동률이 급감하고 있다.
현재 LG엔솔과 SK온의 공장 가동률은 40~50%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미 착공됐거나 완공 단계에 들어간 공장은 인건비와 감가상각비 등 막대한 고정비 부담이 상시 발생하고 있다. 수주 잔고라는 버팀목이 이제는 가동률 저하와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재무 체력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업황 부진 속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총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32.6% 늘어난 1046GWh를 기록했지만,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15.7%로 전년 대비 3.5%포인트 하락했다.
LG엔솔(9.3%)과 SK온(3.9%)은 사용량이 늘었음에도 점유율은 제자리걸음이거나 하락했으며,
삼성SDI(006400)는 상위 10개 업체 중 유일하게 사용량이 5.1% 감소하는 부진을 겪었다. 반면 중국의 CATL(38.2%)과 BYD(16.7%)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내수와 해외 시장을 동시에 장악하며 점유율 1,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실적 전망 역시 어둡다. 최근 증권가는 국내 배터리 3사가 지난해 4분기에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엔솔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할 경우 적자 폭이 4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각각 수천억원대의 영업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러한 실적 부진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2025년 9월 말) 이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10월 기준 전월 대비 48.9% 감소)하고 공장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AMPC 수령액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결국 향후 배터리사들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기차에만 매몰되지 않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포트폴리오 재설계를 얼마나 얼마나 속도감 있게 해내는지에 달려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배터리 업황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ESS나 다른 제품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확장해서 대응하는 게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강조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