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대통령 말 한마디에 금융감독원이 금융권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모습은 매 정권때마다 목격되는 모습입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과 '잔인한 금리' 발언 이후 금융당국이 지배구조와 금리, 여신 관행 전반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습니다. 전임 정부 때 관치 행보가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만 직접적인 회장 사퇴 압력은 없으면서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는 점에서는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권 초 지배구조 문제 시 반복
12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역대 금감원장 중 취임 초기부터 금융사 지배구조나 경영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거나, 그 과정에서 '관치' 논란이 제기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08년 '민간 금감원장' 체제가 자리 잡은 후에 최수현(9대)·최흥식(11대)·이복현(15대) 전 원장 등이 금융사 지배구조 이슈에 비교적 직접적으로 관여해왔습니다.
특히 전임 정부인 윤석열정부에서는 대통령이 2023년 1월 금융지주를 겨냥해 ‘주인 없는 회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지배구조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습니다. 이후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 관행과 이사회 독립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임기 초기에는 특정 인물을 직접 거명하지 않으면서 지배구조를 문제 삼았다가 이후 회장 인선 과정에 돌입하면서 노골적으로 회장 교체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 전 원장은 공개석상에서 특정 인사를 지목하면서 "현명하게 판단하실 것으로 본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는 결단", "선배로서 존경할 만한 판단" 등의 발언을 내놓았는데요. 실적과 조직 안정성을 이유로 연임이 유력시되던 금융지주 회장들이 일정 기간 또는 막판까지 버티다 결국 연임 도전을 접었습니다.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속도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금감원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습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권을 향해 '부패한 이너서클'을 언급하자, 이찬진 현 금감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금융위원회와 함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습니다.
전임 원장 시절에도 유사한 논의 기구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취임 직후 전면에 배치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첫 시험대가 된 곳이
BNK금융지주(138930)입니다. 금감원은 대통령 발언 이후 한 달이 채 안돼 BNK금융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애초 인선·지배구조 점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던 검사 범위는 인선 과정뿐 아니라 여신 취급 전반에 대한 점검으로 확대됐습니다.
금융권에서는 대통령의 지배구조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금감원의 현장 조사와 검사 확대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임 정부 시절이 겹쳐 보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이 원장은 감독당국의 과도한 경영 개입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출범을 앞둔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TF에 대해 "특정 후보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며, "이사회의 독립성이나 사외이사와 CEO의 임기가 함께 끝나는 부분, 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관련 등은 점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TF에 대해 "특정 회장 후보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사진은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이찬진 원장이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직접적 사퇴 압박 발언 없어
금리 문제에서도 닮은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윤석열정부 때 대통령이 고금리 국면에서 은행권을 향해 '이자장사', '은행 종 노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후 이복현 전 원장은 "기준금리가 내려가는데도 대출금리가 내려오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예대금리차가 과도하게 벌어지는 구조는 정상적이지 않다", "금리 산정 과정이 합리적인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습니다.
당시 금감원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상호금융까지 대출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사의 대출금리 상승 추이를 주 단위로 살펴보며 사실상 금융권에 금리 인상을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개별 금융상품을 지목하기보다는 금리 산정 체계 전반을 문제 삼았는데요.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도 대출금리가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등 시장금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현 정부에서도 유사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고금리 상황에서 서민과 자영업자가 감당해야 하는 금리는 너무 잔인하다", "금리가 정책과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러자 금융위원회 역시 취약차주 대상 중금리 대출 공급, 채무조정 참여, 금리 부담 완화 노력 등 포용금융 실적을 경영 평가와 감독 지표에 반영하고,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차등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포용금융 실적에 대한 평가는 금융위로부터 감독·검사 집행권을 위임받은 금감원이 맡는 구조입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언급 등 금융권 비판 발언과 취약계층 보호라는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당국의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메시지가 반복될 경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추진력이 있음에도 회장 사퇴 압력 등 직접 개입이 없다는 점은 전임 정부와 다르다"며 "민관 합동 지배구조 개선 TF를 가동하면서 관치 금융 논란을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만 지배구조와 금리 체계 개선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발언과 조치의 경계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등 금융권 비판 발언이 이어지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사 지배구조와 금리 체계 등에 대해 점검하고 나섰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