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포스코(
POSCO홀딩스(005490))가 제철소의 심장을 자체 AI로 자율 제어하고,
LG(003550)가 독자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으로 공정 지능을 내재화하는 등 일부 대기업들은 앞서가고 있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면 상황은 엄중합니다. AI 엔진을 달고도 돌릴 전력이 막히고, 공정의 핵심 노하우를 글로벌 빅테크에 저당 잡히는 ‘데이터 주권’ 상실의 위기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습니다.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전력망 건설 지연에 막힌 AI 동맥
AI는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일반 공정이 스마트 공장으로 전환될 때 필요한 전력은 기존 대비 최소 수 배 이상 폭증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주요 제조 거점은 전기가 원활히 흐르지 않는 ‘전맥경화’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전력(015760)공사에 따르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주요 송·변전 설비 건설사업 54건 중 30건(55.6%)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공장으로 보낼 ‘혈관’이 막힌 상황입니다. 근본 원인은 발전 시설은 지역에, 소비처는 대도시에 쏠린 ‘에너지 비대칭’ 구조에 있습니다. 비수도권 전력을 수도권으로만 보내는 송전망 확충 방식이 지역 간 불평등을 키우며 전력망 적기 건설의 구조적 한계를 낳았습니다. 그 결과 수도권 AI 데이터센터 신청이 ‘전력 계통 포화’로 잇따라 반려되고 있습니다.
AI는 전기에너지를 데이터 지능으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입력 단계인 에너지 인프라 확충 없는 AX는 엔진 없이 외관만 바꾸는 ‘자동차 튜닝’에 불과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모든 가용 자원의 공론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에너지는 먹고사는 문제이지 이념 전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원전 활용의 필요성에 쐐기를 박은 것도, 제조업 AX를 뒷받침할 에너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풀이됩니다.
국내 공장에서 생성된 제조 데이터가 글로벌 빅테크의 클라우드로 흡수되며, AI 시대 제조업의 주도권과 수익 구조가 해외 플랫폼에 종속되는 상황을 표현했다. (사진=챗GTP)
재주는 한국이, 돈은 미국이?
전력난보다 더 보이지 않는 위협은 ‘데이터 주권’의 상실입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5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 부족률은 4.1%로 전체 산업 평균(2.2%)의 약 두 배에 달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1월18일 내놓은 ‘기업 AI 전환 실태 보고서’에서도 국내 제조기업의 80.7%가 AI 전문 인력이 없다고 답했으며, 82.3%는 AI를 경영에 활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중소·중견기업은 자체 시스템 구축 대신 글로벌 빅테크의 클라우드 AI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 공장의 수십 년치 핵심 조업 노하우가 고스란히 해외 클라우드 서버에 쌓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장조사업체 IDC가 발간한 ‘전 세계 AI 및 자동화 지출 가이드’ 보고서는 기업이 외부 플랫폼에 의존할수록 원천 데이터의 통제권이 플랫폼 기업으로 귀속되는 ‘데이터 락인(Lock-in)’ 현상이 공정 제어 영역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공정 레시피가 담긴 데이터가 외부 학습 재료로 흐르는 순간, 우리 제조업의 ‘수익 설계도’가 글로벌 빅테크의 통제권 아래 놓이는 셈입니다. 최재식 카이스트 김재철AI대학원 교수(설명가능 인공지능 연구센터장)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잘 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 공정의 경우 외산 장비나 라이선스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자체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가 전력을 동력 삼아 질주하는 중국의 제조 로봇 군단. 중국은 풍력·태양광 등 풍부한 에너지 인프라를 무기로 제조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며 한국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사진=구글 제미나이)
‘데이터 만리장성’ 쌓은 중국
중국은 국가 주도의 ‘데이터 인해전술’로 격차를 벌리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글로벌 등대공장’의 약 45%가 중국에 쏠려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는 200만대를 돌파하며 전 세계 물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 차이에 따른 제조 비용의 격차도 확인됩니다. 한전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평균 170~180원대입니다. 반면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송전망을 갖춘 중국 서부 제조 거점의 전력 거래 가격은 kWh당 약 0.24위안(약 46원) 수준으로, 한국 기업은 중국 경쟁사 대비 최대 4배 비싼 전기료를 부담하며 싸워야 하는 실정입니다. 전력 소모량이 극심한 지능형 공장 가동 시, 이러한 에너지 단가 차이는 국내 제조 AX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AI 산업은 단순한 전력 공급을 넘어 ‘고품질의 전기’를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이 생명”이라며 “결국 얼마나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느냐가 국가 제조 AI 경쟁력의 핵심인 만큼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3편에서는 ‘피지컬 AI’와 ‘데이터 연합’으로 공정 두뇌를 국산화하고, 기술 종속을 끊을 K제조업의 마지막 승부수를 조명합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