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을 통해 ‘상법 3종 세트’를 완성시킨 정부·여당이 다음 과녁으로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겨냥하고 나섰습니다.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도입해 대기업 총수의 상속·승계 과정에서 빚어지는 주가 저평가 유도 등 ‘꼼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목적입니다. 상법, 노란봉투법,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 잇단 정책 속도전에 재계에서는 볼멘소리만 나옵니다. 경영 환경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시장 반응이 긍정적인 탓에 속앓이만 하는 모습입니다.
서울 도심 속 마천루의 모습. (사진=뉴시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정책조정회의에서 “1·2·3차 상법 개정으로 기업의 혁신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가 선순환하는 건강한 자본시장의 토대를 완성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박차를 가하겠다”며 “주가 누르기 방지법,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 등 남은 자본시장 개혁을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도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해는 짧은데, 갈 길이 멀다”며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정부·여당이 상법 다음 입법 과제로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겨눈 셈입니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지난해 5월 이소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일컫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평균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세가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추는 꼼수를 막기 위한 법안입니다. 상속세 산정 기준을 바꿔 기업이 주가를 낮출 동기를 없애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대기업 총수를 겨냥한 것입니다.
현행법상 상장사는 상속 개시일 또는 증여일 전후 각 2개월 간의 평균 시세가액을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부과합니다. 하지만 주가가 오를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까닭에 승계를 앞둔 대기업 총수들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춘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이 의원도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루어지는 기업들의 경우 사업적 목적 외에 석연치 않은 계열사 간 주식매매 및 유상증자, 합병, 분할 등을 통해 주가 저평가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아오곤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미만 상장사에 대한 상속·증여세 부과 시 비상장사처럼 주가가 아니라 순자산가치의 80%를 기준으로 세금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PBR은 회사의 순자산 대비 주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배 미만일 경우 기업이 가진 자산 가치보다 주가가 낮게 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회사를 청산한 금액보다 주식 시장에서 매겨진 몸값인 시가총액이 낮게 형성됐다는 것으로 실제 자산 가치보다 주식이 저평가됐다는 의미입니다.
코스피가 상승세를 이어가며 6,140대를 나타낸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장사 PBR 1배 미만 ‘태반’
실제로 코스피 상장사 기준 PBR이 1배 미만인 곳은 절반을 넘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종가 기준 코스피 상장사 806곳 가운데 PBR이 1배 미만인 곳은 503곳으로 전체의 62.4%에 달합니다. 코스피 5000을 넘어 6000 시대가 개막했지만, 여전히 절반이 넘는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된 셈입니다.
특히 승계를 앞둔 기업 지주사의 PBR이 낮은 점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으로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으로 승계 과정이 진행 중인 롯데그룹의 경우 지주사인 롯데지주의 PBR은 0.43배에 불과했고, 4세 승계 구도를 준비 중인 코오롱그룹의 지주사 코오롱 역시 PBR이 0.55배로 낮은 수준입니다. 또한 승계 작업 중인 LX그룹의 지주사 LX홀딩스의 PBR은 0.41배, 동국제강그룹의 동국홀딩스는 0.18배 수준에 그쳤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발이 있을 수는 있지만 주가 누르기 등 문제를 그대로 놔두면 자본시장이 크게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 짚어줘야 할 이슈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했습니다.
재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기업들이 그동안 인위적으로 주가를 통제해 왔다는 지적은 다소 의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각 기업별 상황과 인식에 따른 차이가 있는데 무조건 주가를 누른다고 보는 인식이 아쉽다”며 “정부·여당이 시장 친화적으로 가고 있는데, 글로벌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본원적인 경쟁력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되는 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재계, 부담감 커지지만 ‘속앓이’만
상법과 노란봉투법, 그리고 주가 누르기 방지법까지 기업을 겨눈 정부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속앓이만 하는 모습입니다. 연이은 상법 개정 이후 주가가 급상승하는 등 시장 반응이 긍정적인 상황에서 대놓고 반대 의견을 내기엔 부담이 큰 까닭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주가가 워낙 올라가고 있으니까 정부 정책에 기업들도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했습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날 3차 상법 개정안 통과 후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존중한다”는 언급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이 본부장은 이어 “이번 개정이 주주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등의 과정에서 취득한 특정 목적 자사주 문제는 향후 추가 논의를 통해 보완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재계는 다음달 10일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최근 정부의 시행령까지 확정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내용들이 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거스르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며 “노란봉투법 도입은 이미 정해진 거니까 운영을 해보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할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