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이란과의 전쟁 비용을 인근 아랍 동맹국들에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전쟁 비용을 동맹국들이 부담했던 것과 판박이입니다. 여기에 이란도 본격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받을 계획입니다. 대이란 전쟁이 협상과 확전의 기로에 선 가운데 벌써부터 트럼프발 '전쟁 청구서'가 전 세계 곳곳에 날아드는 모양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서 메릴랜드주 앤드루스합동기지로 향하는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걸프전 전쟁 비용, 미 동맹국 90%가량 '부담'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랍 국가들에 비용 분담을 요청하는 데 상당한 관심이 있다"며 "대통령의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더 자세히 언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빗 대변인의 발언을 보면, 백악관 내부적으로 아랍 동맹국들에 전쟁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과 핵 위협을 제거해 주는 대가로 아랍 동맹국들이 안보상 이익을 얻게 되는 만큼 이들 국가들이 전쟁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과거 걸프전 당시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이 전쟁 비용을 부담했던 전례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입니다. 미 국방부가 1992년 의회에 제출한 '걸프전 수행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에 들어간 비용은 총 610억달러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미국이 부담한 돈은 70억달러 정도였고, 나머지 540억달러를 미국의 동맹국들이 떠안았습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이 낸 비용은 360억달러로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 가운데 중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본과 독일도 당시 160억달러를 부담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을 전액 부과하겠다고 일본을 밀어붙여 분담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또 독일에는 '무기 수출 중단'으로 압박에 나섰습니다.
걸프전 때 미 국무부 차관보로 재직했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해당 지역 국가뿐 아니라 유럽에 있는 국가나 일본 등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 아주 초기 단계에 결정했다"며 "내 기억에 그들(동맹국들)은 약간 당황했고, 그래서 미국이 (구걸) 깡통을 들이민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비용 청구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중동 내 정치적 파장이 예상됩니다. 이란의 공격으로 이미 피해를 입은 상황인데 전쟁 비용까지 부담해야 해야 할 경우 반발이 적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란전으로 미국 내 경제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악화된 민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이후 중동을 비롯한 동맹국에 전쟁 청구서를 보낼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이 문제가 현실화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이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중동과 아시아가 입게 되는 셈입니다.
특히 미국이 대이란 전쟁에서 쓴 돈은 걸프전을 능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달 2월28일 전쟁 개시 이틀 만에 미사일 발사 등에 56억달러를 썼고, 약 2주간 쓴 비용은 120억달러로 예상됩니다 미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대이란 전쟁으로 첫 4주 동안 약 250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소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미 국방부는 대이란 군사작전을 수행하려면 2000억달러가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고 백악관에 요청한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호르무즈 통행료 현실화…"트럼프, 폐쇄돼도 종전 용의"
이와 함께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까지 처했습니다. 이란 의회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내용을 담은 새 관리 계획안을 승인했습니다. 이번 계획안 통과는 통행료 부과 조치를 이란이 국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으로, 통행 허가와 비용 부과를 이란의 제도적 통제 아래 두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징수와 관련해선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 전쟁 중재국들도 적극 나섰습니다. 특히 미국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받자고 직접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타스님통신>은 통행료 부과를 통해 이란이 연간 1000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을 우선순위에서 내려놨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좌관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상태로 남아 있더라도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종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