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미국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와 중동 전쟁이라는 기존 변수에 이어 최근 유럽연합(EU)의 플라스틱 지침이 새로운 '암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환경이 이른바 '다중 위기(Polycrisis)'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극복을 위한 민관의 비상한 대응 전략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일 서울 여의도 FKI 컨퍼런스센터에서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 관계자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글로벌 경제 현안대응 기업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부)
"전례 없는 공급망 리스크"
민관 원팀을 통한 통상 불확실성 해소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1일 '글로벌 경제 현안대응 기업간담회'의 포문을 연 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입니다. 여한구 본부장은 현 통상 상황과 관련해 "최근 미 무역법 제301조 조사, EU 철강 TRQ(저율관세활당) 등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확산되는 가운데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자원 공급망 리스크가 전례 없이 고조되면서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지난주 참석한 제1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MC-14) 결과를 밝히면서 "전자적 전송 무관세 관행, 지재권협정 비위반 제소 모라토리엄 등이 일부 국가들과 입장 차이로 연장되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전자상거래협정 임시 이행 선언 등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WTO 개혁 등 다자 통상질서 복원이라는 방향성에 상당수 국가들이 공감하는 데 반해 그 원인과 방법론에 대한 간극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대미 현안에 대해서는 미 301조 민관 합동 대응 TF를 중심으로 관세 조치 향방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기존 관세 합의의 이익 균형을 유지하고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확보한다는 원칙하에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급변하는 에너지 이슈에 대해서는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협의해 나프타 및 원유 공급을 확보하고 주요국 상무관을 소집, 기업 애로 해소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게 여 본부장의 설명입니다.
인도·메르코수르 등 신흥시장과의 협력 등 수출 시장 다변화도 거론했습니다. 이날 간담회 취지는 사실상 민관 원팀을 통한 통상 불확실성 해소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활동 충격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경기 하방 위험과 고물가 등 경제활동 충격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서 낙관적 시각이 점점 약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유 공급 차질로 경기침체 가능성을 내다보는 반면, 기업 실적 등을 고려해 과도한 비관론을 경계하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JP모건 측 분석을 보면, 분쟁 장기화로 걸프산 원유가 차단될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 시나리오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1일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재생원료 관련 법령의 근본적인 한계는 재생원료 사용의무 이행실적을 산정·검증하는 기준이 충분히 구체화돼 있지 않다. (출처=국회입법조사처)
EU 플라스틱 장벽도 '수출 비상'
그러는 사이 EU의 무역장벽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D) 이행 결정 개편안을 폐기물기술적응위원회 표결을 통해 가결한 EU의 선도적 기준 재편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우리 수출기업과 재생원료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EU의 SUPD 제6조 5항에 근거한 신규 이행 결정 초안은 기존 이행결정을 대체해 화학적 재활용 및 질량수지(Mass Balance) 방식을 재생원료 함량 산정에 포함하는 방향입니다.
재생원료 목표 비율 자체가 아닌 '산정 기준'을 전면 재편하는 이번 결정은 단순한 기술 규정의 수정이 아닌 제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EU는 플라스틱 음료병의 재생원료 함량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2025년 음료 페트병 내 재생원료 25% 이상 사용에서 2030년에는 모든 플라스틱 음료병 내 재생원료가 30% 이상으로 의무화됩니다. 이 수치를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유럽 시장 진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최근 국제 분쟁과 원유·나프타 가격 변동에 따라 석유 기반 플라스틱 제품의 공급 불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 원료 조달 안정성과 단순 환경 규제를 넘어 실질적 무역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우리나라도 2026년부터 음료 페트병 재생원료 10% 의무 사용을 시작으로 2030년 30%까지 확대를 목표하고 있지만 핵심 제도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산정 기준·검증 체계·수입 원료 인정 기준 등이 아직 미비하다 보니 구조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대EU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현 초안 기준으로 2027년 11월까지 국내 생산된 재활용 페트병(rPET)은 EU 시장에서 SUPD 목표 충족용 원료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국내 rPET를 EU 수출 식음료 용기에 활용하려는 기업이나 EU 역내 파트너에게 재생원료 함량을 인증하려는 기업 모두에게 직접적인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한국 기업이 대응 시기를 놓칠 경우 2030년 목표치 적용을 앞두고 EU 적합 rPET 조달난과 가격 급등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따라 가짜 재생원료(그린워싱)를 막기 위해 화학적 재활용 인증 기준을 까다롭게 세우고 수입산 검증 강화와 3년 단위 제도 점검 등 고품질 재활용 생태계 전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김경민 입법처 조사관은 "OECD 회원국으로 EU가 요구하는 제3자 검증 체계, 질량수지 회계 방식, 연료 사용분 제외 원칙 등과의 제도적 정합성 확보가 선결 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국내 산정 기준과 검증 체계의 정비는 국내 규제 준수의 문제만이 아니라 EU 시장 접근성과 수출 경쟁력을 결정하는 통상 과제임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7일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직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