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는 의사입니다!

입력 : 2014-03-03 오전 9:08:26
저는 의사협회장입니다. 의사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의사협회장이지만, 의사들에게 야단도 많이 듣는 의사협회장입니다.
 
일례로 몇 년 전 의료사고가 발생한 어느 병원 앞에서 의료사고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의사가운을 입고 1인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의사인 제가 왜 그랬을까요? 대다수 의료사고가 의사 개인의 실수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 고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족은 오래 전 의료사고를 통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의 아들은 27년 전, 제가 근무하던 병원 의사의 가벼운 실수가 원인이 되어 두 번의 사망진단과 한 번의 가망 없는 퇴원 조치를 받았습니다.
 
제 아들이 아무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회복하는 기적이 저의 가정에 일어나기까지 저의 가족은 많은 심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저의 가족에게 일어난 의료사고의 원인은 반나절에 1백명 가까운 외래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의료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의료제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가족이 의료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의료사고를 겪는 환자들이 제게 도움을 청하는 일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부분의 의료사고가 개인의 실수보다는 잘못된 의료제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회복실에 방치되었다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끝내 식물인간이 된 젊은 산모는 병원이 낮은 진료수가로 인해 충분한 간호인력을 고용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인력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응급실에서 적절한 수술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교통사고 환자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그 지역에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절반은 취업이 어려워 전문과목을 포기하고, 전문성과 동떨어진 미용성형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1인시위를 했던 사건은 피곤에 지쳐 집중력이 떨어진 전공의에 의해 뒤바뀐 주사제를 맞고 백혈병을 앓던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원인은 전공의의 과도한 근무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전체 전공의의 절반 이상이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공의의 과도한 근무환경 때문에 많은 의료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방흡입술을 받았다가 다발성 장천공으로 사망한 젊은 여성은 경영난으로 폐업 후 미용성형 의원에 취업하여 지방흡입술에 처음 도전해 본 외과의사의 미숙한 시술 때문에 생명을 잃었습니다.
 
전문의를 취득하여 개업한 의사들의 평균 개업기간은 3년에 불과하고, 이중 약 60%가 경영난으로 인해 전문과목을 바꾸는 실정입니다. 마치 대형 수퍼마켓 때문에 골목상권이 무너지듯, 대형병원이 동네의원과 경쟁하고 있어 동네의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사는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있지만 대다수 의사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치료한 환자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밤새 곁을 지켰던 환자가 회복세를 보이는 새벽, 그때 행복을 느끼며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의대를 지원하고 십수년에 달하는 혹독한 교육과 수련과정을 이겨내고 의사가 됩니다. 의사들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무게를 가진,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많은 중압감을 보람으로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사는 국민에게 고통을 줄 수도, 또는 희망과 기쁨을 줄 수도 있는 직업인입니다. 대다수 소방관이 돈을 벌기 위해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듯, 대다수 의사들도 돈을 벌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린다는 숭고한 직업을 통해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것을 희망하며 의사가 된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최근 의사들이 총파업을 결정했습니다. 총파업을 묻는 8일간 진행된 투표에 5만 명 가까운 의사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76.69%의 높은 찬성비율로 총파업이 결정됐습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사들이 대체 왜 이런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첫째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건강에 위험한 제도 즉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정책을 막아내고, 둘째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부가 추진하거나 방치하고 있는 잘못된 의료제도가, 의사들의 총파업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더 크게 위협하고 해친다고 의사들이 판단하고 총파업 투쟁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진료는 '휴대폰이나 일반전화 혹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진찰행위를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오진의 결과는 환자의 피해로 돌아갑니다. 의사들이 막아야 합니다.
 
정부는 또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료영리화 정책이 의사들에게 돈을 벌어줄 것인데 왜 반대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은 '환자를 위한 진료를 투자자를 위한 진료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투자자를 위한 진료는 과잉진료를 낳고, 환자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의사라면 이런 제도가 통과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정부가 의사들에게 낮은 보험수가만 지급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를 통해 받을 것을 주문하는 제도, 그 때문에 대형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의료비 폭탄을 안기도록 하는 제도,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이중지출을 해야 하는 제도, 의사가 처방한 약을 약사가 싼 약으로 바꿔서 조제하는 경우 정부가 약값 차액의 30%를 국민의 건강보험료에서 떼어 약사에게 지급하는 제도, 의사가 배운대로 진료하지 못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마련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진료해야 하는 제도,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가 아니라 경제적 진료를 강요받는 제도, 이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어느 전공의의 글을 아래 첨부하며 장문의 호소를 마칩니다.
 
“응급실에서 피바다 심폐소생술 아비규환을 경험했습니다. 응급실은 환자로 시장통입니다. 대학병원에 모든 중환자를 던져놓고 119는 가 버리고 병원은 간호사들과 어리버리한 신규 인턴 선생들과 밤잠 설치는 레지던트 뿐입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전문의는 없습니다. 건물은 화려하고 시설은 삐까뻔쩍해지는데 의료의 질은 한참 떨어지고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갑니다. 젊은 교통사고 환자는, 방금 자살해서 10층에서 뛰어내린 환자와 밀려오는 다른 교통사고 환자로 인해 어쩌면 뇌출혈이 점점 심해질지 모를 일입니다. 경련을 하네요. 그런데 다들 심폐소생술을 하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바쁘네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30대 남자가 저렇게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직지도 전문의 하나 없이 주말과 공휴일을 레지던트에게만 내팽겨쳐놓고 이 큰 병원이 굴러갑니다. 당직전문의 상주는 의료의 질 향상과 전공의 보호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합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파업을 지지합니다.”
 
큰 병원의 응급실이 이렇게 전공의에게만 내맡겨진 이유는 인건비 절감을 해야 병원의 경영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부가 세계 최고의 의료제도라고 선전하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의 실제 모습입니다. 억울하게 생명을 잃어가는 환자를 진료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의사들은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꾸려는 의지가 절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의 이번 투쟁은 의사들이 오해를 받고 욕을 먹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번만큼은 반드시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꿔야겠다고 굳게 결심한 의사들이 정부를 향해 벌이는 싸움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간절히 원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응원을 간곡히 바랍니다.
 
대한의사협회장 노환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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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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