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지는 TPP·기싸움 FTA, 글로벌 무역위기 타격?

입력 : 2014-08-20 오전 10:30:11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세계경제 회복이 지연되면서 국제무역도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자칫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국제무역연구원 등에 따르면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대해서 확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TPP와 한-중 FTA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타결 가능성을 말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7월에 TPP 수석대표 회의가 있었지만 12개 참여국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한-중 양국 정상이 연내 타결에 합의했기 때문에 실무진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협상에 주력하고 있지만 상품분야에서는 아직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그간 TPP와 한-중 FTA 동향을 설명할 때마다 언급한 내용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인데, 사실상 1년간 무역협정 추진이 지지부진함을 자인한 것. 1년 전에는 TPP와 한-중 FTA에 낙관적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 상황은 당시를 무색하게 만든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열고 '한-중 FTA 연내 타결'에 합의했다.ⓒNews1
 
문제는 최근 글로벌 무역동맹 추진이 전반적인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TPP와 한-중 FTA 협상 역시 그 여파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TPP와 한-중 FTA 타결이 물 건너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31일자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원활화 협정 채택이 결렬됐다.
 
이번 협정은 관료주의적 무역장벽을 낮추고 농업 보조금을 줄이는 한편 저개발국과 최빈국 지원을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었는데 인도가 자국의 식량안보를 걱정해 정부의 식품비축과 식품 보조금 지급을 주장하면서 미국·유럽연합(EU)등과 갈등을 빚었다.
 
무역장벽을 낮추고 다자간 교역자유화를 추구하자는 WTO 협상에서 다름아닌 무역장벽으로 난항을 겪자 WTO 체제 자체가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올 판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무역원활화 협정 최종합의 실패의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WTO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간 마찰을 해결할 수 없다면 다자 무역체제의 기본 기능에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TPP의 대항마로 떠오르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요즘은 소식이 없다. RCEP은 중국이 미국·일본 중심의 경제체제를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걷고자 준비한 것으로 2015년 말을 타결목표 시점으로 정했지만 지금 중국은 TPP 쪽을 기웃하는 처지다.
 
중국과 동남아권 국가 간 경제력 차이, 글로벌 시장규범과 괴리된 중국의 정치체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일부 국가들이 경계심 등이 RCEP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처럼 지금 각국은 글로벌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다자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세계경제 회복이 늦춰지자 자국 시장을 지키면서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자국 시장을 지키려면 무역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불안이 겹쳤다.
 
우리나라가 역점을 둔 TPP와 한-중 FTA도 이런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TPP는 미국과 일본, 호주, 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참여했지만 서로 경제력과 정치체제 등이 달라 출범 때부터 "타결되면 대박이지만 안 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특히 12개국의 잇속이 각자 다른 상황에서 이들을 아우를 무역협정을 도출하려면 기존 국가끼리 맺은 FTA를 넘어선 규범과 통상이슈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만만치 않다.
 
한-중 FTA 마찬가지인데, 양국 모두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시장을 여는 데는 인색하다. 우리는 중국 측 제조업 시장개방을 요구하면서도 우리의 농업시장 개방은 꺼리고, 중국은 우리에게 농업시장을 열라면서도 자국 제조업 시장은 닫았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TPP와 RCEP 등 최근 여러 나라에서 거대 지역무역협정이 추진 중인데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타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무역체제는 당분간 불확실성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제 자체가 안정성과 성장성에 대한 신뢰를 못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글로벌 합종연횡 역시 큰 기대를 갖게 만들 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태호 교수는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다자간 무역체제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고 이에 따라 글로벌 무역환경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 대해 정치 지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상들이 글로벌 무역체제의 강화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한성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난항 등 최근 국제 통상질서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며 "국제 시장에서 국가 간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교역 환경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무역협상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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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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