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언젠가 칠순을 바라보는 택시기사를 만났던 일이 있다. 고위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후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택시를 구입했다고 했다. “제 아버지도 조금 있으면 정년퇴직을 하시는데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요?” 묻자 기사는 “무슨 일을 하든 아버지가 알아서 하게 두세요. 그런데 아파트 경비원은 안 하셨으면 좋겠네.” 답했다. 본인도 아파트 경비원 일을 알아봤다고 했다. 하지만 24시간 격일제에 월급은 150만원 남짓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데, 무료함을 달래겠다고 병을 사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존에 2교대제를 운영하던 공장들도 상당수 3교대제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아파트 경비원만큼은 2교대제로 회귀하고 있다.
결국 돈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업장에서는 주 40시간 초과, 야간(22~06시), 휴일근무에 대해 통상임금의 50%를 추가 지급해야 한다. 또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생산성이 떨어져, 노무비와 사회보험료를 아끼겠다고 고용인원을 줄이는 것은 사업장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반면 아파트 경비원에게는 연장·휴일근무라는 개념이 없다. 근로기준법 제63조의 예외조항에 따라 감시·단속적 근로에 속하는 아파트 경비원은 법정 노동시간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이 제도로 인해 우리나라에선 24시간 격일제에 의한 주 84시간 노동도 합법이다. 따라서 사업장은 1인당 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려 경비원 수를 줄이는 것이 이익이다.
실제 근로계약 과정에서는 꼼수도 판친다. 원칙대로라면 24시간 격일제의 경우 주 84시간에 대한 임금이 지급돼야 하지만 상당수의 아파트단지는 식사시간, 휴게시간 등을 노동시간에서 빼고 50~60시간에 대한 임금만 지급한다. 그렇다고 휴게시간이 온전히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쉬는 중에 택배·외부차량이 들어오거나 주민이 부르면 언제든 무급노동에 동원된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모욕·폭행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사회는 공분한다. 하지만 언어·물리적 폭력만 갑질이 아니다. 월 관리비 몇 백원 아끼겠다고 경비원들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것도 갑질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노동법이 그 갑질을 용인하고 있다.
김지영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