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사람을 쓰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

입력 : 2016-09-27 오후 1:22:29
[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몇 개월 전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기업인들이 말하는 애로사항이란 듣기에 다소 충격적이었다. 진출국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첫 번째였고, 노동시간 및 고용형태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는 게 두 번째였다.
 
얼마나 저렴한 임금을 원했으면, 얼마나 긴 법정 노동시간을 원했으면 월 30만원도 안 되는 임금, 우리와 비슷한 노동시간 규제가 사업 철수를 고민해야 할 만큼 큰 부담이었을까 싶다.
 
이 이야기를 여러 노동전문가에게 전하니 돌아온 답변은 한결같았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사람을 쓸 준비가 안 돼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쓸 준비란 제도에 대한 이해와 노동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만연한 한국식 고용관행의 문제다.
 
여기에서 핵심은 노동에 대한 인식이다. 어느 사회든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이 오르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권리의식이 향상된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늘고, 고용주는 임금단체협상 등 노동자 단체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일이 잦아진다.
 
그런데 노동을 저비용·고효율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기업은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더 저렴하고 수동적인 노동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을 전전해야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찾아간 나라조차 사회·제도가 발전해 노동 착취가 불가능하게 되면 그때엔 설 곳이 없어진다.
 
우리나라는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빗발쳤고, 200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1997년)로 불거진 비정규직 문제를 바로잡고자 3개 노동관계법이 제·개정됐다. 이때부터 10년간 최저임금도 2배 가까이 인상됐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지만, 실질임금은 OECD 평균의 80% 수준이다. 또 최저임금 미만율은 10%를 넘고, 임신·출산기 임금노동자 3명 중 1명은 여전히 육아휴직을 못 쓰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면 기업들은 난색을 표한다. 국내 소비불황,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등 이유도 다양하다. 일부에선 국내 인건비 상승과 경직된 노동시장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기업들을 해외로 내쫒을 것이라는 위기론도 나온다.
 
반대로 저비용·고효율만 추구하는 고용관행이 노동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낮춰 노동생산성을 하락시키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떨어뜨려 내수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목소리는 적다.
 
노동을 도구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비용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혁신이 최고의 경쟁력인 시대에서 인건비 절감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 우위는 제한적이다. 특히 인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노동력 활용은 기업은 물론 사회의 경쟁력도 좀먹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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