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1집까지 10년 걸린 메스그램 “실패가 우릴 만들어”

지난달 10년 만에 첫 정규 앨범 ‘Cheers For The Failures’
일본, 중국 음악 시장서 호응…“8090년대 장르까지 다 녹여”

입력 : 2020-05-20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성채 하나 짓는다는 생각으로 건설한 사운드와 연주는 다소 거칠고 일그러진 형태이나 어쩐지 매혹적이다. 당장 생각나는 시각 이미지를 찾자면 어둠과 안개 사이 묘한 빛을 명멸하던, 영화 ‘가위손’의 고딕풍 성채. 하드록 사운드의 맹렬한 질주를 비집고 화사하게 분출하는 선율과 성음은 스웨덴 멜로딕 메탈밴드 ‘아마란스(AMARANTHE)’나 독일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 ‘데드락(Deadlock)’을 떠오르게도 한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노들섬라이브하우스. 무관중 생중계 공연 ‘음악노들 온 에어’ 차 무대에 오른 밴드 메스그램[신유식(기타), 자니 신(FX, 보컬), 수진(드럼), 지영(보컬), 찬현(베이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4일 오후 노들섬라이브하우스 대기실에서 만난 밴드 메스그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수진(드럼), 신유식(기타), 지영(보컬), 찬현(베이스), 자니 신(FX, 보컬).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는 지난달 10년 만에 첫 정규 1집 ‘Cheers For The Failures’를 내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코로나19로 쇼케이스, 간담회 등 주요 행사가 취소됐지만 이들의 비대면 온라인 생중계 공연은 특히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
 
한국과 중국 동시 발매에 이어 오는 27일에는 일본에서도 앨범이 발매된다. 특히 메탈, 하드코어, 트랜스코어 등 헤비니스 음악이 ‘주류’로 통하는 일본 시장에 한국 밴드가 진출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일본의 헤비메틀 전문매체 ‘번(BURRN!)’은 ‘한국 익스트림 메탈의 기수(旗手)’로 이들을 정의하며 “날카로운 비명의 남성 보컬과 요염한 여성 보컬의 절묘하게 얽힌 이들의 일렉트로 메탈코어 사운드는 일본 메탈신에서도 인지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하던 지난 2월 초에 밴드는 일본에서 세 번째 투어를 진행했다. 이번 앨범의 발매를 미리 축하하는 공연 일환. 도쿄의 유서 깊은 공연장 ‘메구로 로쿠메이칸’ 무대에 섰다. 일본의 전설 밴드 엑스 재팬(X-JAPAN)이 공연한 바 있는 곳.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잠잠해질 날에는 중국, 유럽 등 해외 문을 두드려 볼 야심찬 계획도 품고 있다.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랜선 라이브를 위해 무대에 오른 밴드 메스그램.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거칠고 무거운 메탈 요소와 전자음악의 화사한 멜로디. 이 이질적 요소를 황금비율로 혼배한 이들 음악은 흔히 포스트 하드코어, 트랜스코어라 분류된다.
 
아이돌과 힙합 음악이 득세하는 시대에 10년 동안 이 ‘외길’을 타온 멤버들을 이날 공연장 대기실에서 만났다. “팀명은 엉망진창이란 의미의 ‘Mess’에 착안해 지었어요.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른 우리를 재밌게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Gram’은 벤다이어그램처럼 각양각색인 우리들을 묶는다는 의미예요.”(유식)
 
2011년 결성한 밴드는 초기부터 일본 야마하 주최의 콘테스트 ‘아시안 비트’ 등 국내외 각종 대회 수상으로 인지도를 점차 쌓았다. 그리고 2014년 첫 EP ‘This Is A Mess, But It’s Us’ 발표 전. 벼락 같은 반응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왔다. 스웨덴 대표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아치에너미’ 드러머 다니엘 엘런드슨이 음반작업을 돕겠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당시 엘런드슨은 그간 국내, 해외 간 사운드 격차에 좌절하던 멤버들을 일으켜 세웠다. 페이스북과 이메일로 파일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은 ‘프로듀싱’에 관한 멤버들의 개념 전반을 재정립시켰다. 스네어 소리의 미세한 질감 차이부터 연주 감각, 록 음악 편곡의 구성 방법, 해외 트렌드를 보는 눈, 믹싱의 개념…. “(그전까진) 디스토션 하나만 걸면 메탈리카 같은 음악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 꼬맹이였달까. 록 장르엔 리얼 연주 뒤 가공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때 많이 배웠어요.”(수진)
 
메스그램. 사진/아이원이앤티
 
드넓은 소리 세계에 천착하다보니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음악에 관한 치열한 토론, 몇 번의 멤버 변동을 거치다 보니 자그마치 10년이 흘렀다. 매일 아침 싱글 음원들은 광고처럼 쏟아지는데, 이들은 거꾸로 간다. 피, 땀, 눈물의 시간. 고르고 골라 엮은 12곡 앞에 꽃 그림을 박은 앨범 한 장이 세상에 나왔다.
 
‘Cheers For The Failures’. 앨범명에 왜 ‘실패자들’을 새겨뒀을까. 여기서 실패자들은 지난 10년간 음악이란 시험대 앞에 서온 이들이다. 꿈 하나 이루겠다고 도전하고 욕먹고 다시 일어나던 분투의 시간.
 
밴드는 지금도 주중엔 모두 회사 가고 짬을 내 합주하며 꿈을 꾼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며.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앨범도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실패들은 언제든 환영입니다.”(자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Karma’는 ‘지금의 메스그램’을 정의하는 곡이다. 멜로딕한 기타 편곡과 복잡한 듯 그루브한 드럼의 전개, 지영의 고음과 자니의 스크리밍 조화. 악기 편곡과 수정 과정을 1년 이상 거쳤다. ‘A Handful of Light’에서는 메틀과 하드록 필의 무거운 사운드를, 다른 타이틀곡 ‘Rockstars’에서는 경쾌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접목시킨 밴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저희의 음악을 한 장르로 결정하긴 쉽지 않아요. 굳이 표현한다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느낌일 겁니다. 8090년대 풍미한 밴드 음악 요소까지 다 녹아 있어요.”(수진)
 
밴드 메스그램. 사진/아이원이앤티
 
보통 여성 보컬이 두꺼운 하드록 사운드를 뚫고 나오기 쉽지 않은데 유려하면서도 파괴적인 지영의 고음은 밴드와 제법 잘 어울린다. “제 아무리 불세출의 여가수라도 이런 음악 스타일과 잘 어울리긴 쉽지 않을 겁니다. 지영씨 목소리는 미국 팝이나 일본 록 같은 느낌을 구현해내는 카멜레온 같다고 생각합니다.”(자니)
 
멤버들 각자가 즐겨 듣는 음악가들도 각양각색이다. 마를린 맨슨 티셔츠를 손에 들고 있던 찬현은 “메탈리카, 메가데스도 좋아한다”고 했다. 유식은 기타팝과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쟈니는 교향곡부터 피아노연주곡에 이르는 클래식도 줄곧 듣는다. 수진은 머틀리크루로 대표되는 LA메탈부터 얼터너티브, 하드코어, 뉴메탈, 스크리모까지 줄줄 읊었다. 지영은 록을 필두로 다양한 장르를 듣는다며 미소 지었다.
 
10년 만의 정규 앨범. 여행지로 표현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누구나 한번씩 다 가봤거나 다가봤을 느낌의 하와이요. 록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꼭 거쳐가야 할 음악이 됐으면 해요.”(수진)
 
“우리 노래는 멜로디컬하니까, 그럼 비오다 갠, 혹은 무재개 뜬 하와이.”(지영)
 
“록의 뜨거움을 생각하면 더운 지역들이 연상되기도 해요. 태국 푸켓이나 인도네시아 해변 같은 느낌 아닐까”(자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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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