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달걀 불안 키운 농식품부·식약처 '엇박자'…계란유통센터 '좌초'

AI 방지·달걀 공정가 형성한다더니…2년 간 집행률 '0%'
식약처,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로 계란유통센터 사업성↓
식약처 허가에 농가내 포장업 비율 75%…AI 취약 우려
"달걀 적정가 형성·AI 방지 사실상 어려워져"
구조적 문제에도 농식품부, '슬쩍' 내년 예산 '44조 편성'

입력 : 2021-11-10 오후 12:30:00
[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정부가 계란 위생과 공정가격 형성을 위해 추진한 '계란유통센서시설현대화' 사업이 사실상 좌초 위기에 놓였다. '계란유통센서시설현대화'는 2017년 '살충제 계란 사태' 이후 안전한 계란 공급과 합리적인 가격 결정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간의 엇박자로 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2년째 예산 집행률 '제로' 사업으로 전락했다. 특히 근본적인 해법 없이 내년 예산에 또 다시 끼워넣는 등 애물단지 사업이 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농식품부·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계란유통센서시설현대화' 사업 예산에 올해와 같은 규모인 44조1000억원을 편성했다. 계란유통센서시설현대화 예산은 2020년 54억9000만원, 올해 44조1000만원을 편성해온 사업이다.
 
하지만 2년 간 집행률은 '0%'다.
 
정부는 지난 2017년 살충제 달걀 사태가 발생하자, '식품안전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식용란선별포장업체 의무 유통제를 마련, 2020년 4월부터 본격 시행한 바 있다. 달걀을 선별·세척·포장하는 업무를 식용란 선별 포장업을 통해서만 수집·판매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계란유통센터시설현대화가 추진됐다. 센터 신축과 현대화를 통해 식용란 선별 포장업 기능의 중추 역할을 하기 위해 추진한 때는 2018년부터다.
 
아울러 계란유통센터는 소고기·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달걀의 도매가격을 형성할 수 있어 달걀값 급등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올해 계란유통센터 신축 사업 2곳 중 1곳의 선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선정된 다른 한 곳의 예산집행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11월 현재까지 관련 예산집행률은 0%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반 진행된 대규모 고병원성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탓이다. 계란 공판장으로 달걀을 출하해 계란 공판장이 충분한 집하 물량을 확보해야하지만, 달걀 생산량이 줄면서 센터의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체 산란계 23%가 살처분되면서 생산량은 급락했다. 센터 설립도 지연되면서 계란 공판장 출하촉진지원을 위한 융자사업의 편성 예산 200억원도 집행되지 않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센터 설립에 대한 수요가 있어 관련 예산을 편성했는데 올해 농가의 수요가 줄면서 2개 업체 중 한 군데 업체에서 사업을 중도포기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달걀 생산량이 평년수준을 회복하더라도 센터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식용란선별포장업체 의무 유통제 시행을 앞두고 달걀의 유통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자, 제도 시행에 앞서 식약처가 개별농가에 식용란선별포장업을 대규모로 허가했다. 이에 따라 농가의 자체 달걀 세척으로 포장·유통이 가능해지면서 센터 존재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됐다.
 
지난해 9월 농식품부도 올해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그해 4월 식약처가 농가에 허가한 것을 반영하지 않고 과도한 예산 편성에만 매달렸다. 관계부처 간의 엇박자와 탁상행정으로 사업이 좌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불어 식약처가 허가한 농가의 업체 대다수가 AI에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사항이다. 허가업체수 598개 중 449곳(75%)은 농장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선별포장장이 농가 내부에 있을 경우 수평전파 위험이 높아 AI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감염을 피하기 어렵다.
 
이 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농식품부 측은 '출입구가 다르기 때문에 전파위험이 없다'는 입장이나 식약처가 이미 허가를 내준 상황에서 농가의 반발을 예상해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정처 관계자는 "이미 식약처에서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이를 취하할 경우 농가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며 "정부 목표한 달걀의 적정가격 형성, AI 방지 등은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더욱이 관계 부처가 대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해 겨울철 AI 유행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는데 있다. 이날 충청북도 음성군 소재 메추리 농장의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으로 김부겸 국무총리가 농식품부에 긴급지시를 하달한 상태다. 해당 지역의 경우 48시간 동안 전국의 가금농장, 축산시설, 축산차량에 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시중의 달걀값은 6000원대로 전년보다 두배 가까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치솟는 사료값과 AI로 인한 살처분 사태가 또 반복될 경우 달걀 파동 장기화 등 '에그플레이션(egg+flation)' 압박은 고조될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양계협회 등 생산자단체, 유통업계와 협력해 산란계 농가가 공판장으로 달걀을 출하하도록 노력하는 등 계란 공판장 활성화를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9일 농림축산식품부·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계란유통센터시설현대화 사업의 내년도 예산에 올해와 같은 규모인 44조1000억원을 편성했다. 사진은 폐기되는 계란. 사진/뉴시스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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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윤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