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박근혜 사면에 담긴 정치적 함수

문 대통령, 참모진도 모르게 단독 결정…"이재명·민주당 '부담' 없앴다"
박근혜 '메시지' 주목, 보수표심 요동칠 수도…31일 회고록 출간
박근혜, 어떤 입장 내놔도 윤석열에겐 '악재'…윤석열 지지시 '중도층 이탈'

입력 : 2021-12-26 오후 12:03:38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2017년 3월 구속된 뒤 4년9개월 만이다. 당장 내년 대선에 미칠 파장을 놓고 여야는 득실 계산에 분주해졌다. 촛불정부가 촛불민의를 저버렸다는 진보진영의 비판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내놓느냐에 따라 대구·경북(TK) 등 보수표심이 요동칠 수도 있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적폐청산을 주도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칼을 겨눈 바 있어 자칫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지난 24일 문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 사면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를 저지른 인사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깨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정치인 사면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180도 선회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아직까지 정치인 사면에 대해 검토한 적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사면 발표 불과 하루 전까지도 청와대는 물론 여당인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도 해당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7월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입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면 발표 당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 결정을 전혀 몰랐다"며 "다른 수석들도 오늘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몰랐다"며 "민정수석 외 다른 수석은 다 몰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지난 21일 아들 문제로 물러난 김진국 전 민정수석과 주로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에 대한 사면 검토 지시도 김 전 수석을 통해 이뤄졌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송영길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물론 이재명 후보와도 일체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사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민주당과 이 후보에게 전가하지 않고 문 대통령 홀로 짊어지겠다는 의도"라고 청와대 사정에 밝은 민주당 의원들은 해석했다. 이 후보 역시 26일 "후폭풍이나 갈등 요소를 대통령 혼자 짊어지겠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공식적인 사면 이유는 '국민통합' 차원이었지만,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가 결정적 배경이 됐다. 앞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면 문제는 답이 워낙 뻔한 것이어서 언제 하느냐의 문제였다"며 "연말에 하느냐, 3월9일 대선을 치르고 하느냐, 시기 선택의 문제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심하게 안 좋다는 말씀을 듣고 대통령께서 결심을 앞당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이라는 정치적 단죄의 성격이 강한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이 반영됐다. 또 박 전 대통령은 4년9개월, 이 전 대통령은 2년2개월이라는 수감기간의 차이도 이 전 대통령을 배제한 결정적 원인으로 해석됐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대선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TK를 중심으로 보수표심을 움직일 영향력이 여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 후보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한 것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자' 덫에 갇혔기 때문이란 게 당 안팎의 공통된 해석이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사면 발표 직후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 주신 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는 박 전 대통령 메시지를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신병 치료에 전념해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발표한 24일 서울 중구 황학동 시장에서 한 시민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전 대통령이 오는 31일 출간하는 회고록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는 정치적으로 동고동락을 했던 친박계에 대한 섭섭함이 들어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 중에 적은 메모를 엮은 책으로, 박 전 대통령은 서문에서 "믿었던 주변 인물의 일탈로 인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모든 일들이 적폐로 낙인 찍히고,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충실하게 이행했던 공직자들이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며 "무엇보다도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도 느꼈다"고 밝혔다. 
 
당장 국민의힘은 걱정으로 가득한 모습이다. 어렵사리 건넌 듯 했던 '탄핵의 강'에 다시 빠져 늪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동지였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결별했던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는 "박 전 대통령 등 뒤에 칼을 꽂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는 유승민, 김무성, 권성동과 같은 불법탄핵 역적세력들은 반드시 정치적 죄값을 받아야 한다"고 들고 있어섰다. 이들은 앞서 윤 후보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당시 탄핵 책임을 물어 윤 후보에게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실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정부 들어 특검에서 적폐청산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 받아 기수 관례를 뒤집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윤 후보의 최측극인 권성동 사무총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이끌었던 국회 측 소추위원이기도 했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환영한다"는 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권 사무총장은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정치적 술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홍준표 의원도 "이간계로 야당 대선 전선을 갈라치기 하는 수법은 가히 놀랍다"며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야당 분열을 꾀하는 획책으로 바라봤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4일 서울 구로구 고아권익연대를 찾아 조윤환 대표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 걱정처럼 이준석발 내홍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자칫 국민의힘 분열만 초래할 수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캠프에 내분이 발생한 상황"이라며 "윤 후보가 이 후보에게 지지율이 따라잡혔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게 조금 더 진행되면 후보교체론까지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친이계가 주축이 된 국민의힘 선대위 구조를 고려할 때 "후보교체론은 친박계가 주도해나갈 것"이라며 윤 후보가 친박계 껴안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윤 후보 입장에서는 문재인정부를 압박할 카드 하나가 소멸이 돼 버렸다"며 "대통령과의 대치 전선 중 하나가 소멸됐기 때문에 (보수 지지층의)결집력 강도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탄핵 수사를 했던 박 전 대통령과 윤 후보와의 관계도 애매해지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침묵을 유지해도,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이 윤 후보를 괴롭힐 수 있다. 반대로 윤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경우 그를 탄핵으로 이끌었던 촛불민심이 재결집될 수도 있다. 이는 윤 후보에게 기울었던 중도층 표심의 이반을 뜻하게 된다. 윤 후보로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홍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윤 후보가 굉장히 복잡하고 난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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