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그게 또 장기하라서 얘기가 된다

첫 솔로 EP ‘공중부양’…3월 데뷔 공연도
말맛 살린 현실밀착형 노랫말 “자기소개서 같은 음반”

입력 : 2022-02-24 오후 6:39:5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침밥을 먹고 나면 임진각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계속 갔다. 
 
어떤 날은 철원으로도 빠지고, 신호도 없는 지역에 다다랐다. 맑은 하늘 아래 머리가 멍해졌다. 한 문장씩 떠올렸다.
 
이것은 흡사 죽비를 맞고 깨달음을 좇는 중생의 일상 아닌가. 22일 첫 솔로 EP 음반 ‘공중부양’을 낸 장기하를 다음날 오후 화상으로 만나봤다. 특유의 밤톨머리를 하고 데뷔 시절처럼 수염을 기른 그는 “밴드(장기하와 얼굴들) 활동 이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첫 EP ‘공중부양’으로 솔로 데뷔한 장기하.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어떻게 하다 보니? 그가 이날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한 줄 한 줄, 독특한 리듬감으로 튀어대는 가사처럼 들렸다. 어떤 답변은 멍게구름 한아름 베어 문 듯 몽롱하기도 했지만, 그게 또 장기하라서 얘기가 됐다.
 
“밴드 활동 이후 2년 간 고민한 결과 내 목소리를 내 목소리답게 음악으로 만드는 것 하나면 되고 나머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제 목소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무반주로 녹음하고 나서 대중가요로 인식될 수 있게 최소한의 소리를 입힌 게 전부입니다.”
 
선공개곡 ‘2022년 2월 22일’과 총 5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은 최근 유행하는 소울 풍 전자음들이 간헐적으로 켜졌다 중단됐다 하는 흐름들이 눈에 띈다. 평론 쪽에서는 ‘에이블톤(미디장비 중 하나) 2주 수업을 듣고 만든 것 같지만 장기하라 수긍된다’는 말도 나온다. 중력처럼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아, ‘디딜 곳을 잃은 채 둥둥 뜬 것’처럼도 들린다.
 
첫 EP ‘공중부양’으로 솔로 데뷔한 장기하.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구체적인 작업기를 들어보니 ‘어떻게 하다 보니’를 앨범명으로 정해야 할 정도다. 휴대폰 음성 녹음으로 담아둔 초안(작곡, 작사)을 기본으로 컴퓨터 마우스로 가상악기를 찍고 악기는 특정 파트만 건반과 기타 정도를 쳤다. “대충 이런 템포의 이런 것으로 만들면 되겠구나, 해서 웬만큼 음악처럼 들리게 한 것이거든요.” 
 
‘싸구려 커피’, ‘그건 니 생각이고’, ‘별일 없이 산다’…. 밴드 시절처럼 특유의 말맛을 살린 현실밀착형 노랫말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특유의 리듬감으로 펄떡 댄다. 적당한 위트와 풍자를 섞어 청년 세대 애환을 무겁지 않게 그리면서도, 한국 사회의 문제의식이 커피 잔향처럼 배긴 가사는 문학적이다.
 
타이틀 곡 ‘부럽지가 않어’엔 오늘날 소셜미디어 환경에 관한 고찰을 담았다. ‘모든 자랑을 다 이기는 최고의 자랑은? 아하,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이겠군!’이라는 자문자답의 위트와 해학이 깔려 있다. “오늘날 부러움에 중독되기 딱 좋은 환경 아닌가요.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위험한 감정이라 생각해요.”
 
뮤직비디오는 이디오테잎 등과 작업한 송예환 작가가 맡았다. 송 작가는 영상 속 주인공을 '부럽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은 부러움의 대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떠다니는 인물'로 설정했다.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가사가 제목 동어의 반복이다.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심청가’가 샘플링으로 실려 밀고 당기는 박자감을 형성하는 대목이 실험적이다. 앨범이 공개되고 노래가 랩처럼 들려 일부 음악팬들 사이에선 ‘국힙(국내 힙합) 원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래퍼냐. 가수냐, 노래냐, 랩이냐 구분을 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이번 앨범은 제 자기소개서 같은 것입니다. 멋있고 잘 맞으면 앞으로 다른 음악 장르, 아티스트분과 협업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2008년 ‘싸구려 커피’로 데뷔한 장기하와 얼굴들은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한국 대중음악 신의 변곡점을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장얼 10년은 대외적으로 어떻게 비춰졌든 간에 좋은 추억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음악신에 나름대로 괜찮은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제 2의 길로 접어든 느낌입니다.”
 
어느덧 불혹을 넘긴 그에게 음악은 불가분의 존재다. “음악은 이제 좋다, 나쁘다의 단계를 넘었어요. 공기 같은 거예요.”
 
오는 3월 17~20일, 24~27일 더줌아트센터에서는 첫 솔로 데뷔 무대를 갖는다. 무대 미술가 여신동, 안무가 윤대륜, 이디오테잎 디구루가 그와 뭉쳐 놀이 같은 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음악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중히 여기는 그 답게 채희준 디자이너와 협업해 자신의 서체 ‘기하’도 내놓았다.
 
첫 EP ‘공중부양’으로 솔로 데뷔한 장기하.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코로나 사태 이후 둥둥 뜬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일상을 잃은 자들은 지금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앨범은 의도한 걸까.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질문을) 듣고 보니 제 음반이 시의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은 중요한 게 빠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마지막은 꿈처럼 말했다.
 
“(음반 작업 때)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사람들이 지하철도 타고 은행도 가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자세히 보면 발이 다 떠있는 모습. 중력이 없는 공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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